기자수첩

제주를 레드아일랜드라 한다. 1948년에 일어난 4.3 핏빛 사건은 해안에서 5km 이내를 벗어나면 주민들을 무조건 사살한다는 소개령이 떨어졌다.

용초도, 1952년 6월 4일 아침 미군용선이 출현해 잠수부가 수심을 쟀고, 6월 13일경 미군이 마을에 들어와 주민 강제 소개 됐다.

제주는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을 간직한 섬으로, 4.3 사건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학살터였고 용초도는 1952년 6월 19일부터 1954년 3월까지 미군 272명 한국군 816명이 근무한 3개 구역 16개동 수용소가 존재했다. 포로 인원은 총 8,056명이었고 7,192명이 송환됐다. 봉암은 1952년 6월 19일부터 1953년 12월 21일까지 2개 구역 16개동이 설치됐다.

삼도수군 통제영 세병관에 오르면 지과문(止戈門)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칠 지(止), 과(戈)자는 창이란 뜻 외에 전쟁, 싸움이란 뜻도 있다. 지과문은 전쟁을 멈추는 문이란 뜻이다. 통제영 존재이유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였다. 세병은 두보의 시에서 차용한 은하수의 물을 길어와 갑옷과 무기를 씻어 영원히 사용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평화의 뜻이다.

통영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란 8년간의 참혹한 전쟁을 겪었고 제주는 4.3사건이 터졌고 6.25가 발발하자 중공군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곳이다. 당시 용초섬 주민들은 포로수용소 설치에 의해 주민 소개령이 떨어지자 고향을 떠나야만 했고 귀향 후 포로수용소 유적을 망치로 깨부수면서 토지를 일궈야만 했다.

최재형 용초도포로수용소 복원사업 추진위원장(한산농협 조합장)은 전쟁을 막는 평화의 섬으로 주민들이 함께 나서서 살기 좋은 섬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람을 전했다.

제주 4.3 평화공원에는 독일 베를린 장벽이 전시돼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평화의 섬인 이유이다. 용초도와 한산도 봉암 포로수용소 복원과 맞물러 주민들은 평화를 갈망하는 바람은 세병관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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