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용 염장 "옛 궁궐과 왕릉의 주렴 복원은 염장의 사명"

덕수궁 함녕전에 근대이후 처음으로 통영 장인의 손에 의해 큰 대발인 외주렴이 걸렸다.

외주렴(外朱簾)은 통영무형문화재보존협회 이사장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 보유자 조대용 선생의 작품이다.

지난 20일 붉고 화려한 외주렴(대발)이 주인의 품에 안기면서 함녕전은 마치 화장한 새색시의 얼굴처럼 생기를 되찾았다는 평가다.

덕수궁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승하한 마지막 거처로 올해 3월에야 일반인에게 처음 문을 열었다.

이런 역사적인 곳의 옛 모습 복원으로 마치 신부의 붉은 입술처럼 화려한 외주렴이 걸리던 날 함녕전 뜰에는 문화재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외주렴 복원에는 세계적 패션브랜드인 에르메스 코리아의 후원으로 문화재청과 아름지기재단, 문화유산국민신탁 등이 함께 했다.

통제영 12공방의 하나로 통영의 얼굴이 되어 서울 한 복판 덕수궁에 내걸린 외주렴은 조대용 선생과 딸이자 이수자로 대를 잇고 있는 숙미 씨도 함께 제작에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외주렴의 크기는 가로 292cm, 세로 3m20cm 규모로 3개가 만들어졌다.

조대용 염장은 지난 9월부터 제작에 들어가 약 3개월에 걸쳐 옻칠과 소목장 등의 분야별 도움을 받아 외주렴을 완성했다.

조선의궤 등 고증에 따라 우선 4mm 두께로 깎은 대의 표면에 나전장 전수조교 장철영 선생이 옻칠에 붉은 돌가루를 섞은 주칠로 검붉은 색감을 입혔다.

훼손을 막기 위해 주렴의 테두리에는 2겹의 천으로 마감했다. 안쪽은 기계로 만든 면과 바같은 베틀로 짠 무명천을 사용했다. 실은 실크(명주실)와 쪽물을 들인 옥색 등 2가지를 사용해 한땀 한땀 손바느질로 마무리했다.

설치 등은 소목장 전수조교 김금철 선생과 경남도 문화재인 소목장 조복래 선생이 함께 참여했다.

외주렴을 문 위쪽 벽에 걸어 아래 위로 당기기 위한 도르래 역할을 하는 못과 장석 등도 고증을 토대로 국화문양 등을 새기고 옻칠을 입혀 태웠다. 약 1천도씨의 열을 가하면 옻칠이 쇠붙이에 까맣게 녹아들어 오랫동안 녹을 방지하는 효과를 낸다.

고증을 토대로 옛 방식의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며 제작된 외주렴은 통영에서 서울로 옮겨져 덕수궁 함녕전에 옛 모습 그대로 걸렸다.

지난 20일 덕수궁 함녕전에 조대용 염장의 외주렴 걸던 날.

현재 조대용 염장의 발이 걸린 곳은 종묘와 여주 영릉(세종대왕릉)의 위패를 가리는 용도로 제작됐으며, 선친 조재규 선생의 주렴은 경복궁에 걸려 전시되고 있다.

발은 사용 목적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일반 가정집에서 별다른 문양 없이 쓰던 밋밋한 대발과 궁궐에서 사용된 붉고 큰 대발, 종묘나 왕릉 등의 위패를 가리는 용도로 사용된 대발 등 이다. 그 외 큰 절에서 부처를 옮길 때 사용하는 가마와 왕의 가마 등에 사용되는 발의 색은 대부분 쪽빛을 띤단다.

조대용 염장은 “옛 궁궐에서는 20여 명의 염장이 있었을 정도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현재도 왕릉과 대부분의 궁궐에는 발을 걸었던 도르래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며 사라진 주렴을 안타까워 했다.

지난 20014년에는 각종 자료를 만들어 궁궐의 외주렴 등 복원을 위한 노력 끝에 문화재청이 제작에 나서려다 세월호 사건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고건축 전문가들은 “옛 궁과 왕릉 등에 사용됐던 주렴은 생활문화와 건축물의 일부로 꼭 복원되어야 할 가치가 높다”며 문화재청의 관심을 촉구했다.

조대용 염장은 영릉에 필요한 발 의뢰와 함께 보내온 사진을 보고 처음 제작한 것을 계기로 많은 조사와 연구를 통해 40여기의 왕릉과 궁궐에 외주렴 등의 복원에 열정을 쏟고 있다.

지난 20일 덕수궁 함녕전에 조대용 염장의 외주렴 걸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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