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 개척하는 마음으로 꿈나무들 키운다

“괜찮아! 다시 하면 돼!”
우리 팀 골대에 공이 날아와 박혔을 때, 한 아이가 소리쳤다.
“그래, 그래! 다시 하면 돼!”

기량을 올리는 데 힘을 다한다.

아이들이 서로 사기를 북돋우며 다시 파이팅을 외쳤다. 벌써 몇 번째 슛을 허용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기죽지 않았다. 양경환 감독은 축구의 친구로 성큼 올라선 아이들이 기특했다.

얼마전 다녀온 동계축구캠프에서 있었던 일이다. 통영에 하나뿐인 유소년클럽이었던 양감독의 팀에는 6학년이 없었다. 초등학교 축구에서 고학년이 없는 팀이 밀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한두 골 먹은 다음에도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패스를 살리고 원하는 플레이를 하는 것.

양감독은 경기를 하는 태도를 보며 아이들의 기량이 쑥 자라 있는 것을 본다.

양경환 감독은 올해 3년째 통영유나이티드 유소년축구클럽을 이끌고 있다. 태권도학원을 다니듯 놀며 운동할 마음으로 온 아이들, 축구가 좋아 제대로 배워 보고 싶은 아이들이 섞여 있는 팀이다.

통영 꿈나무, 첫 번째 좌절

유니폼이 좋아 시작하게 된 축구의 길이었다. 양경환 감독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네 살 위 형이 뛰는 축구경기를 보러갔다가 덩달아 축구를 하게 됐다.

축구공을 따라 뛰다보면 찬겨울 바람도, 한여름 햇볕도 상관없었다. 어린 경환은 유영초등학교 축구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꿈돌이였다. 자연히 체육특기생으로 중학교에 진학했다.

진주고등학교 축구부에서도 꽤 주목받는 선수였다. 고3때는 이미 프로구단인 수원 블루윙즈에 입단해 훈련을 받았다.

너무 이른 출발이 문제였을까? 뒤늦게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땐 이미 손짓하던 여러 대학이 특기생 모집을 끝낸 다음이었다. 선택의 폭이 좁아진 다음에 양선수는 진주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1년 뒤, 대학이 4년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1학년을 다시 다녀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양선수뿐 아니라 당시 같이 학교에 다녔던 체육특기생 다수가 운동을 그만두었다.

“여러 가지 회의가 왔어요.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지요.”

강물을 거슬러오르는 연어처럼

고향으로 돌아온 양선수는 잠깐 두룡초등학교 축구부 코치를 하다가 군대에 갔다. 그렇게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라운드를 떠났다.

“아깝고, 그리운 시간이었어요.” 산란기가 되면 강물을 거슬러 제가 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어처럼, 공백기간 동안 양선수의 마음은 초록 잔디가 깔린 그라운드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부천FC감독으로 있던 고교 은사님이 불러 주었을 때, 양선수는 두말 않고 그라운드로 달려갔다. 코치와 선수를 겸한 고된 생활이었지만 뛸 수 있어 행복했다.

선수 은퇴 뒤 고향에 내려온 다음에는 삼성조선소 축구직장팀으로 입사했다. 삼성조선소 직원으로서 일도 하고 실업팀 경기에도 나가는 것이다.

“한 3년 삼성에 있었어요. 고향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니까 고향 축구의 미래를 자꾸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죠.”

몸담고 있는 조선업이 몰락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무겁게 한 건 고향 축구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라운드에서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양경환 감독

축구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축구 꿈나무들은 초등학교 축구부를 통해 발굴되었다. 축구가 좋아 공을 좇아다니는 아이들이 학교 축구부에서 기량을 다지다가 체육특기생을 모집하는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선수의 길로 들어서곤 했던 것이다.

"자, 한번 뚫어봐!"

그러나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해야만 하는 학교 축구는 서서히 입지가 좁아져 가고 있다. 더구나 합숙훈련에 대한 여러 가지 폐해가 문제되면서, 도시에서는 벌써부터 축구교육이 클럽위주로 바뀌었다. 여러 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을 중심으로 하교 후에 모여 축구를 하는 것이다.

통영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이미 많은 초등학교 축구부들이 문을 닫았고, 지난해를 끝으로 하나 남아 있던 두룡초 축구부도 해체되었다.

“옛날에는 통영을 ‘축구의 도시’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축구를 배우고 싶어도 배울 데가 없는 거예요.”

양 감독이 클럽을 만들었던 3년 전에는 두룡초 축구부가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전학하지 않고 축구를 배우고 싶은 아이들이 있었고, 통영에는 유소년 클럽이 하나도 없었다.

통영유나이티드유소년축구클럽

통영유나이트 유소년 축구단

지난 3년 양경환 감독은 ‘황무지를 개척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대부분은 취미로 축구를 하지만, 그중에는 빛나는 보석이 될 원석이 있게 마련이다.축구클럽은 학원처럼 학생들이 교육비를 내고 축구를 배운다. 운동장 대여와 차량운행, 코치 인건비 등을 주려면 부산이나 거제의 클럽들이 받는 만큼을 받아야 하지만, 어떻게든 문턱을 낮추고 싶어 그보다 적은 교육비를 받는다. 통영체육회나 축구협회를 통해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개인사업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어 지지받지는 못했다.

“저는 목표가 성적을 잘 내는 게 아닙니다. 원석을 발견해 기량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 상위팀에 가서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지금 운동장을 달리는 이 아이들 중에 제2의 김민재가 나오길 기대하며 오늘도 양감독은 아이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달린다.

"내가 하는 걸 잘 봐~"
"선착순 10명!"
축구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차량 2대로 등하원 지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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