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아카데미 4분33초 대표 고봉균

‘프레임(frame)’의 사전적 해석은 ‘나무나 금속 등으로 짠 액자’를 말한다. 이 단어의 뜻은 조금씩 확장되어 ‘뼈대’라는 뜻을 가지기도 하고 현대에서는 ‘이론, 사상 등의 틀’을 말하기도 한다. 프레임이라는 단어가 정치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조금 더 의미가 확장되어 ‘정치적인 상대방을 일정한 틀속에 가둔다’라는 내용을 갖게 된다.

선거철은 물론이고 보통의 상황에서도 정치적인 상대를 일정한 틀 속에 가두는 건 매우 효과적인 책략 중 하나이다. 상대방의 대한 정의를 내려버림으로 인해 정치적 상대방은 그 정의에서 대중에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프레임에 정의 내려진(혹은 갇힌) 정치 세력은 큰 틀에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행동도 이미 내려진 정의 안에서 이해된다. 때문에 많은 경우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되는데, 일반 대중은 프레임에 갇힌 정치세력의 본심은 생각조차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프레임은 일종의 정치전쟁이다. 흔히들 프레임 전쟁이라고 표현한다.

1995년 11월 3일 윤이상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통영에선 윤이상 선생님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어 왔다. "윤이상 선생님은 북한에 동조한 간첩이며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북한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많이 했다"는 의견과 "윤이상 선생님이 간첩으로 몰린 것은 정치적인 이유이며 윤이상 선생님이 북한에 도움을 준 것은 민족적 이유에서이지 이념적인 사고로 인해 한 행동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바로 그것이다.

윤이상 선생님을 간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1985년에 있었던 ‘통영의 딸’ 사건은 매우 호재였다. 그 사실여부와 경과 상황에 대한 증언이 확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윤이상 선생님을 비판하는 좋은 소재로 지금도 활용하고 있다.

윤이상 선생님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윤이상 선생님이 사형선고 후 방면 받아 독일에서 생활할 때 박정희 대통령이 초대장을 보낸 점을 좋은 사례로 든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도 그가 간첩이 아님을 자인한 것 아닌가 하는 논리이다. 덧붙여 윤이상 선생님이 세계적인 음악가임도 곧잘 내세우는 논거 중 하나다. 그 논거를 내세우며 윤이상 선생님이 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이던 간에 음악적으로만 평가하자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답답한 점은 왜 윤이상 선생님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윤이상 선생님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프레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따져보면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의 위대성을 내세우는 것도 진정 음악적인 부분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부정적인 정치적인 프레임을 방어하려는 방편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2018년 3월 30일 윤이상 선생님의 통영 안장을 두고 여러 가지 움직임이 많다. 보수단체 중 통영애국시민총연합회 같은 곳에선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김일성을 사모했던 윤이상이 묻힐 곳은 북한의 ‘애국열사릉’이지 통영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한쪽에선 윤이상 선생님 제대로 알기 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예컨대 ‘통로(통영에서 길을 찾다)’라는 단체는 특강을 열어 윤이상 선생님을 우리 이웃처럼 친근하게 이해시키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을 말하는 곳은 없다. 통영에서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은 박제된 동물과 같은 느낌이다. 혹은 박물관의 유물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 같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음악회로 가끔 연주되는 수준에서는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을 접하는 길이 너무 어렵다.

통영국제음악제나 윤이상국제콩쿠르가 열린 지도 어언 20여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 어떤 교육적인 제도나 보급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이 어렵거나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변명하기엔 20년은 너무 길지 않은가?

윤이상 선생님의 정치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진실로 그를 우리 이웃으로 만드는 길은 그의 발자취가 어떻고 그의 생각이 어떻고 하는 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음악을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하며 그 안에서 왜 음악적으로 그가 훌륭한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기 위해선 통영국제음악당이나 윤이상기념관 같은 공적 기관에서 윤이상 선생님의 삶이 아닌 음악 자체를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면 현대음악 등 전문적인 음악교육의 기획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이왕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 연주회를 마련했다면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한다.

통영시도 민간에서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을 소비하게끔 적극적인 유도를 해야 한다. 음악당처럼 일반시민이 접근하기에 벽이 있는 곳만을 소비장소로 한정시키는 건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통영시립박물관, 도서관, 시청의 복도 등에서 BGM으로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을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런 실험을 거쳐 듣기에 어렵지 않은 곡은 민간의 상점에서 사용하게끔 보급해 보면 어떨까? 민간에서 윤이상 선생님 곡을 청음할 때에는 조그마한 지원을 해 주는 건 어떨까?

정치적인 프레임을 벗어나는 건 윤이상 선생님을 정치적으로 방어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의 음악과의 교류와 동감, 그것이 먼저다. 그 교류와 동감에서 얻어진 감동이 그를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정치적 프레임에서 그를 해방시키고 ‘귀향’시키는 길이라 믿는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한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