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함께 해와 서로 닮아가는 부부

18년 활어거리 지킨 거창아지매

“예예, 10시까지라꼬요? 예, 알겠심더.”
서울에 10시까지 대려면 첫차에는 물건을 실어야 한다.
새벽에 나가 작업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단골의 주문은 언제나 고맙고 반갑다.

앞에선 다듬고 뒤에선 썬다.

거창아지매 윤춘희 씨(58세)는 18년째 중앙시장 데파트 활어거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수조에 각종 활어를 담아놓고, 손님의 주문에 따라 회를 떠 주는 일이 춘희 씨의 업이다. 통영 사람들은 대개 집으로 가져가고, 관광객들은 골목을 마주대하고 있는 초장 집으로 들어가 싱싱한 회를 즐긴다.

춘희 씨는 물밖을 나오자마자 펄펄 뛰는 활어를 능숙하게 제압하고, 금세 뽀얀 속살만 거둬 수도에서 나오는 바닷물로 씻는다.

바구니에 생선살을 담아 넘기면, 깨끗한 행주로 물기를 닦아 써는 일은 남편 이점상 씨(64세)의 몫이다. 부부는 이곳에서 이렇게 중앙시장의 일부가 되어 산다.

통영 중앙시장 두 번째 형성된 활어거리

중앙시장에는 활어거리가 셋 있다. 동피랑에 가까운 중앙시장의 오른쪽 ‘통영활어시장’과 데파트 담장에 기댄 ‘중앙활어시장’, 그리고 제일은행 쪽 활어거리다.

싱싱한 생선 사이소~

가장 먼저 통영활어시장이 형성됐고, 몇 년 뒤 거창아지매가 있는 중앙활어시장이 두 번째로 만들어졌다. 18년 전 일이다.

“한 70집 정도가 같이 시작했지요. 한 집에 고무다라 4개씩 해서, 세 줄로 빽빽이 앉았었어요.”

하지만 생각처럼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관광객들은 주로 강구안에 내렸고, 가까운 통영활어시장만을 들러 버스로 돌아갔다. 관광객들이 찾아오기에는 너무 깊은 곳에 있었던 탓이다.

그렇게 몇 년 흐르는 사이, 거창아지매를 비롯한 5집을 빼고 같이 시작했던 다른 가게들은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이 거리가 활력을 찾기 시작한 건 2007년 서해 태안반도 사고 이후다. 서해로 가던 수도권의 관광객들이 남해로 몰려왔고, 바깥 통영활어시장이 공급을 감당하지 못하자, 비로소 수도권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중앙활어시장이 살아났다. 춘희 씨네 가게 단골들도 그때부터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 많다.

데파트 벽에 기대어 형성된 중앙활어시장

거창댁이 하는 가게라 거창아지매

원래 남편 이점상 씨는 배사업을 했었다. 중국산 고기들이 수입되면서 고전을 하고 있을 때, IMF까지 닥쳤다. 먹고살기 막막한 지경이 되었을 때, 중앙활어시장이 조성됐다.

회를 썰고 포장하는 일은 남편의 몫이다.

점상 씨는 배사업을 접고 활어가게를 냈다. 아내 춘희 씨의 고향이 거창이라 상호를 ‘거창아지매’라고 걸었다.

“처음엔 발발 떨려 고기도 잡지 못했어요. 뼈에 살도 많이 붙여놓고. 근데 어떤 맘씨 좋은 손님이 그라데요. ‘아지매도 1년 후면 팔팔할 낍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하다보니 오늘까지 왔심다.”

누가봐도 엉성한 초보였을 춘희 씨는 손님들의 따뜻한 위로를 받아 달인이 됐다.

노점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남편 점상 씨도 가족 같은 시장 사람들을 사귀고, 단골손님이 늘면서 재미를 붙였다.

전화 한 통이면 전국으로 택배를 보낸다.

“중앙활어시장, 많이 사랑해 주이소”

중앙활어시장 수조에는 온도를 맞추기 위한 냉각기가 돌아간다. 실외기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불편하지만, 고기들에게는 최상의 온도를 맞춰 주는 것이다.

수조 온도 표시기

“고기에게 가장 좋은 온도가 13~17도라고 해요. 이 거리는 데파트 벽에 기대고 있어 냉각기를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바닷물 정수도 2단계를 거친다. 전체 물탱크에서 1차 뻘을 거르고, 가게마다 2차 정수를 할 수 있는 정수통을 갖추고 있다. 주기적으로 수조를 소독하고 18시간 동안 정수시스템을 돌려 고기에게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그런데도 가끔 외지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 가격 흥정을 하면서 “통영 살아요”라고 말할 때는 마음이 안 좋다. 시장이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운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경쟁업체가 늘어서 있는 시장에서는 가격경쟁 때문에 바가지를 씌울 수 없어요. 통영에 이주해 사는 통영시민이 그런 말을 하니 좀 유감스럽죠.”

처음에는 발발 떨려 생선을 잡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달인이 됐다.

통영의 얼굴을 파는 가게

물론 그보다는 싱싱하고 맛난 회에 감사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러기에 통영 사람뿐 아니라 서울, 포천, 대전 등 각지에 단골이 있다.

춘희 씨네 단골 중엔 돈만 부쳤다 말할 뿐, 어떤 고기를 얼마나 보내라 말하지 않는 사람이 몇 있다. 알아서 그 값에 맞춤한 양을 보내면 된다.

“그만큼 우릴 믿어준다는 마음이 들어 고맙지요.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고.”

통영, 거제를 찾는 관광객이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 중앙시장.
이곳에서 거창아지매 춘희 씨는 활어와 함께 통영의 얼굴을 팔고 있다.

통영의 이미지를 팔고 있는 거창아지매

키워드

#N
저작권자 © 한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