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동화책 읽어주는 시간을 참 좋아한다.

엄마가 빈 시간, 엄마가 돼주는 사람

새벽 6시, 정미경 씨는 아들 셋의 엄마가 된다. 정작 자기 아이들은 군대로, 대학으로 내보내 같이 살지 않지만, 한 달에 두세 주는 이렇게 7살, 초등학교 2학년, 고등학교 2학년의 엄마가 된다.

“이제 인나라, 학교 가야지~”

배를 타고 나간 아이들의 아빠는 다음주에 돌아온다. 한부모인 아빠가 없는 동안, 미경 씨는 6시에 이 집에 와 밥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낸다.

7시 반에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을 내보내고 9시에 막내를 어린이집 버스에 태워 보내는 것까지가 미경 씨의 일이다. 어린이집과 학교가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시간, 정말 곤란한 가정을 위해 미경 씨는 시간제 엄마가 된다.

“혼자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나 막막했는데, 돌봄선생님 덕분에 살 희망을 얻었습니다.”

이런 부모들이 있어, 미경 씨는 새벽이나 밤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가정의 빈자리를 찾아간다.

6년차 아이돌봄교사인 정미경 씨

이를 위해 가정에서 지불해야 하는 재정은 시간당 7,800원. 소득이나 가계구조에 따라 정부 지원을 75%까지 받을 수 있는데, 그러면 시간당 1,560원이 된다. 이 가정의 경우 돌봄 대상이 2명이기 때문에 1.5배를 낸다.

하지만 미경 씨는 돌봄대상이 아닌 고등학생과 더 대화를 많이 하게 된다. 어젯밤에 피운 것이 분명한 담배꽁초들과 술 마신 흔적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왜, 어제 속상한 일 있었나?” “쌤이 저보고만 뭐라캐요.” “그래서 술 마셨나?” “쏘맥했어요. 쌤이....” 미경 씨를 잘 따르는 아이는 곧잘 속내를 털어놓는다. 아이의 편을 들어주며 잘 들어주면, 아이도 나중에 “건강에 안 좋다. 좀 줄이자.” 하는 미경 씨 말도 잘 듣는다.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아이돌봄지원사업

아이돌봄지원사업은 통영시와 건강가족부가 지원하는 사업으로, 영아부터 초등학생까지 돌봄이 필요한 가정에 교사가 방문하여 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통영시에는 현재 73명의 교사가 활동하고 있고, 작년 기준 311가정이 이 제도를 이용했다.

서류와 면접을 통해 선발해 80시간 이상 교육을 이수해야 돌봄교사가 된다. 돌봄시에 아이가 다치거나 물건이 파손될 경우를 대비해 보험도 들어 있다.

미경 씨는 아이돌봄지원센터의 교육을 통해 풍선아트 자격증도 땄다.

미경 씨가 저절로 청소년 상담까지 하게 된 건, 센터에서 해주는 역량 강화 교육의 힘이 크다. 가족지원, 심리상담, 교육법 등 유익한 교육을 통해 아이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 외 아이들의 마음을 끌기 위한 풍선아트, 난타, 종이접기 같은 실질적인 교육도 한다.

아이돌봄지원사업 담당 김정희 씨와 정미경 씨

“교육을 받으면서, 내가 모르고 했는데 잘한 거구나 할 때도 있고, 그때는 이렇게 했어야 하는구나 싶을 때도 있지요. 배우면서 일하니 더 보람 있습니다.”

대개는 어린이집이 끝나는 오후 5시~8시에 아이를 하원시키고 저녁밥을 챙겨주고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봐주기를 원하는 가정이 많다. 부모의 직업에 따라 밤 9~12시까지를 원하기도 하고, 앞의 예처럼 아침을 챙겨주는 경우도 있다.

대개 미경 씨처럼 아이들을 다 키운 주부들이 돌봄 교사로 활동한다. 교사 기준으로는 150~200만원 내외의 수입이 있지만, 한 가정에 두세 명을 돌보게 되면 300만원이 훌쩍 넘기도 한다. 수입과 보람과 자기 계발을 다 할 수 있는 흔치않은 직업인 셈이다.

미경 씨는 아이들과 놀아주고 씻기고 밥을 챙겨주는 저녁 엄마다.

아이가 좋아 시작한 돌봄교사

미경 씨는 6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하며 속내를 털어놓는 아이를 볼 때, 미경 씨의 도움으로 가정이 회복되는 것을 볼 때 참 감사한 일을 하고 있구나 느낀다.

아기 때부터 돌봐와서, 미경 씨를 엄마처럼 따른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혼을 생각하던 가정이 있었다. 엄마가 일을 하러 타지방으로 떠나야만 했을 때, 미경 씨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줬다. 힘들어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언니처럼 “다 지나갑니다. 내가 도와줄게요.” 위로하기도 했다.

아이들 학습지도, 방학숙제까지 모두 지도하며 엄마가 안정되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가정은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됐다. 몇 년의 빈자리를 채워주면 아이들은 금세 자라기 때문이다.

돌봄지원사업 담당자인 김정희 씨는 미경 씨를 ‘든든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까다롭거나 살림까지 도맡기를 바라는 경우, 너무 열악한 집은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정미경 선생님은 못하겠다 마다하는 집이 없습니다.”

그래서일까? 미경 씨가 입원했을 때도 미경 씨 대상의 가족들은 고스란히 미경 씨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렸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5시부터 엄마가 퇴근하는 8시 사이, 저녁밥을 챙겨준다.

기꺼이 가족이 되어줄게

사실 미경 씨는 이 일을 하기 전에도 남의 아이들을 돌본 적이 있다. 서울과 창원에 사는 동생들의 아들과 딸을 백일 때 데려와 36개월까지 키웠던 것이다. 지금 그 조카들은 중학생이 되었다.

“조카들이 8개월 차이였어요. 쌍둥이 키우듯 같이 키웠지요.”

미경 씨 남편이 더 나서서 안아주고 업어주고 데리고 놀러다니며 조카들을 키웠다. 그때 일이 고마워, 처제들은 큰형부를 최고로 안다. 지금도 미경 씨 남편은 대상 가정 아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급할 때 운전을 해주고, 바깥에 나갈 때 항상 만나는 이웃 아저씨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어릴 때가 참 힘든 것 같아요. 그때 누가 조금만 손잡아주면 잘 이겨낼 수 있는데 말이지요.”

조카들을 키운 경험이 오늘 미경 씨를 이 길로 들어서게 했는지 모른다. 어려운 시기에 동생들의 손을 잡아주었던 것처럼, 지금 미경 씨는 통영의 동생들 손을 잡아주고 있다.

미경 씨의 도움으로 아이들의 엄마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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