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 두 나무가 만나 한 나무가 되다

서로 맞닿아 연이어진 나뭇가지를 ‘연리지’라 한다.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들이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이다.

결혼을 통해 우리나라에 옮겨심기 된 결혼이민자들의 가정은 연리지 같다. 기후와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자란 이들이 옮겨심기돼, 이땅의 나무와 가지를 잇대고 뿌리를 내려 한 나무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이민자로서 또다른 결혼이민자를 돕는 맹상화 씨는 연리지를 가꾸는 과수지기라고나 할까?

맹상화 씨는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난 중국사람이다. 직장생활을 하던 중, 한국에서 온 투자자와 1년 반 교제 끝에 결혼을 했다. 국제결혼이 흔치 않던 2003년의 일이다.

첫 한국행, 친절에서 희망을 보다

때로는 언니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남편이 한국쪽의 서류를 다 해결하고 초청을 한 뒤, 상화 씨는 비자를 받고 홀로 한국으로 입국해야 했다. 사업상 만나 교제를 한 터라 두 사람 사이에는 늘 통역이 있었고, 당시 상화 씨가 아는 한국말은 “안녕하세요?”뿐이었다.

입국카드를 받고 쩔쩔 매고 있을 때,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도와드려요?”

아들과 같이 여행을 왔다는 그 남자는 친절하게 짐까지 찾아줬다. 시차를 잘못 계산해, 남편은 1시간 뒤에나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 남자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주고, 본인 전화번호까지 가르쳐 주며 친절을 베풀었다.

‘아, 한국은 참 살만한 나라인가 보다.’

한국에 대한 첫 느낌이었다. ‘귀인이 도와주면 일이 잘 풀린다’는 중국 속담처럼, 상화 씨는 첫 한국행에서 귀인을 만나 한국생활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이제 상화 씨가 이주여성을 돕는다.

누군가 손잡아 준다면

하지만 한국 사람이 모두 친절한 건 아니었다. 조금 의사소통이 되면, “중국 사람은 왜 결혼만 하고 도망가느냐?”부터 시작해 무례한 질문을 하는 한국 아줌마들이 많았다. 내가 도망간 것도 아닌데, 중국 사람이 모두 그런 것도 아닌데, 공연히 움츠러들고 마음의 문이 닫혔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1년여의 시간은 외롭고 어두운 터널 속 같았다. 오로지 남편만을 기다리는 삶. 바보가 된 것 같은 삶...

“부부싸움도 국제전화로 했어요.”

두 사람 사이에 다리가 돼준 중국의 통역에게 전화를 걸어 서로 입장을 하소연하다보면, 국제전화비가 2~30만원이 되기도 했다.

그 삶에 빛이 비친 건 우연히 위층 언니의 중국말을 듣게 되면서부터였다. 당연히 한국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고 묵례만 하고 지나치던 언니가 상화 씨와 똑같이 한국 사람과 결혼한 중국인이었던 것이다.

남편이 출근하면 언니와 함께 차를 마시고 중국말로 수다를 떨면서, 상화 씨는 한국생활에 적응했다. 먼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린 그 언니를 통해 한국 언니들도 사귀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상화 씨는 그 언니를 자주 생각한다. 얼마나 힘이 됐는지, 얼마나 고마웠는지... 이제 상화 씨가 그 일을 하고 있다.

먼저 걸어온 길이기에, 상화 씨는 이주여성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통영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다문화가족 지원센터에서는 매주 월, 목요일에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을 한다. 섬지역 다문화자녀 한국어지원사업, 통번역서비스, 디딤돌토요학교, 남편교실, 시부모교실 등의 프로그램도 하고 있다.

여기서 상화 씨가 맡고 있는 일은 이주여성의 자조모임을 지원하는 일이다. 현재 통영에는 필리핀, 중국, 기타나라의 3개 자조모임이 있다.

유쾌한 국민성을 가진 필리핀 이주여성은 댄스를 배우고, 문화의 중심지를 자처하는 중국의 이주여성들은 우쿨렐레를 배우고, 여러 나라가 모인 나머지 한 자조모임에서는 뜨개질을 배운다.

상화 씨는 이주여성들의 시간을 조율하고, 적당한 강사를 섭외하여 자조모임과 연결한다. 같이 소풍도 가고, 교육프로그램도 갖고 멘토-멘티 연결도 한다. 한국에 온 지 4년 이상 된 멘토들은 이제 의사소통이 되기 시작한 멘티에게 누구보다 영향력 있는 지지자가 되어 준다.

지원센터의 옥해숙 사무국장은 상화 씨가 자조모임을 아주 잘 이끈다며 칭찬한다.

“이해의 폭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 직원이 할 때보다 이주여성들이 더 많이 모이고 즐거워합니다. 일욕심도 많고 일을 잘하는 직원이에요.”

지원센터의 옥해숙 사무국장은 상화 씨가 자조모임을 아주 잘 이끈다며 칭찬한다.

함께 살아가는 법

결혼이민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충은 언어나 기후뿐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문화의 벽이 사람 사이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나 남존여비사상, 경상도 남성의 무뚝뚝한 기질은 머나먼 타향에서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이주여성에게는 크나큰 장벽이다.

때로는 같이 푸념하며 때로는 다독이며, 상화 씨는 외로운 이들의 손을 잡아준다. “한국 남자 다 그래” 하며 흉도 보지만, 궁극적으로는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며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한다.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하죠. 이런 나라가 어디 있어요? 공부 시켜주고 친구 만들어 주고, 최대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주잖아요.”

상화 씨는 한국을 참 고마운 나라라고 생각한다. 뿌리깊은 인식을 바꿔가는 일은 모두가 해야 할 숙제일 뿐이다.

“서로 노력해야죠. 서로 이해하려 하고 배려하면서요.”

상화 씨는 통영의 연리지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잎을 피워내도록 오늘도 정성껏 물을 준다.

밝은 국민성을 가진 필리핀 이주여성들과 함께
같은 처지의 이주여성들은 서로 보듬으며 한국인이 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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