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할머니의 말을 경청하는 박서정 요양보호사

같이 부르는 노래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박서정 요양보호사(61세)는 뇌경색으로 거동이 어려운 할머니와 마주 앉아 노래를 부른다.

조용한 시골 마을, 오늘은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과 단체 관광을 가서 할머니 혼자 집을 지킨다. 좋아하는 노래에 흥이 나자 할머니는 손을 뻗어가며 다음 소절로 넘어간다.

"짠~" 커피잔을 부딪치며 대화하는 시간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꼬막배를~”
배를 탔던 할아버지 덕에 할머니의 노랫말은 ‘연락선’이 아니라 ‘꼬막배’다. 젊은 시절, 할아버지가 꼬막배를 타고 바다로 일을 나가면, 새댁이던 할머니는 이 노래를 부르며 할아버지를 기다렸단다.

“겨울에는 한 달, 여름에는 보름 만에 집에 왔제. 가고나믄 먼디 채려보믄서 눈물만 철철 흘렸제.”
몇 번째 듣는 말이지만, 박서정 보호사는 “그래, 새댁이 올매나 슬펐겠노.” 하며 맞장구를 친다. 옛날이야기를 하는 동안, 할머니의 마음이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

서정 씨가 요양보호사가 된 건 9년 전인 2010년이다. 봉사활동에 관심이 있어 여성명예파출소장도 하고 이웃의 조손가정을 돌보기도 하다가, 아예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것이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2015년부터는 도움이 필요한 집으로 찾아간다.

“대상자 어르신이 드실 음식, 환경 정리, 운동, 정서 지원을 합니다. 대상자마다 원하는 게 조금씩 다른데, 되도록 맞춰드리려고 하지요.”
젊어서 미용 기술을 익혔던 박서정 보호사는 미용 서비스까지 해 드린다. 따로 미용봉사를 다니기도 하는데, 식구 같은 대상자들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저 따라해 보세요! 손바닥 박수, 손가락 박수, 손등박수~"

“내 부모님이다 생각하고 합니다.”
부모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면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이 나온다. 드실 음식도 만들어 드리고 집안일도 도와드리지만, 오늘처럼 같이 노래도 부르고 옛날 시집살이 이야기도 들어 드리는 게 더 중요한지 모른다.
박서정 보호사는 양파, 야채 같은 재료로 건강까지 생각한 음식을 해 드리려 애쓴다. “아부지, 양파 많이 사다 주이소.” 하고 부탁하기도 한다.

통영사랑노인재가복지센터의 김미라 센터장은 박서정 요양보호사를 “어르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김미라 센터장(가운데)와 통영사랑재가노인복지센터 사회복지사들

집에서 부모님 모시는 노인재가 요양서비스

통영에는 요양보호사를 파견하는 센터가 20여개 있다. 통영사랑노인재가복지센터에는 35명 정도의 요양보호사가 활동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노인장기요양등급을 판정받는데, 1~2등급은 대개 누워서 생활하는 와상환자여서 병원에 많다. 3~5등급을 받은 분들은 집에서 생활하는데, 가족이 없는 경우가 많아 요양보호사의 돌봄에 의지한다.

어르신들의 운동을 도와준다.

등급에 따라 월 100만원~140만원 정도의 요양급여가 정해져 있는데, 이중 15%를 본인이 부담해 요양보호사를 부르게 된다. 차상위 가정은 7.5% 본인부담, 기초수급자는 무료다. 1~2등급은 하루 4시간, 3~5등급은 하루 3시간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청소하고 음식 좀 만들고 운동 시켜드리면 3시간이 후딱 지나가요. ‘이모야, 더 있다 가믄 안 되나?’ 하고 애절하게 말씀하시면 마음이 너무 아프죠.”

이동 시간이 있고, 다음 가정이 있고, 규정이 있기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복지가 좀더 확대돼 4시간 서비스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박서정 보호사는 생각한다.

"가사도우미가 아니랍니다"

김미라 센터장은 요양보호사에 대한 사회적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호대상 어르신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한 서비스를 하는 사람인데도, 그분들의 필요가 가사일과 겹치기 때문에 과도한 집안일을 요청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2달 동안의 이론, 실습 교육을 받고 시험에 합격한 전문가들이시거든요. 다른 가족공간을 청소하게 한다든가 지나친 가사일을 시키면 안 됩니다.”

어떤 요양보호사는 밭일을 하다가 그만두기도 했단다.
치매 환자의 경우 “돈을 가져갔다”고 모함하는 일도 있다. 요양보호사 매뉴얼에 “큰 가방을 가지고 가지 마라” 하는 조항이 있을 정도.

주말엔 미용봉사를 한다.

그래서 박서정 보호사는 어느 집에 가든 가방을 활짝 열어놓는다. 어르신의 마음에 불편을 줄만한 걸림돌은 조금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먹을 도시락도 싸 가지고 다닌다.

혹시라도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어르신을 만나면 “아이고, 어무니 내랑 같이 찾아봐요~” 하며 같이 찾는다. 눈앞에서 과정까지 다 보여주며 어르신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보람으로 하는 직업

“요양보호사를 하기에는 내 나이가 딱 좋은 것 같아요. 어르신들 변덕을 미소로 넘기려면 삶의 지혜가 많이 필요하거든요.”

박서정 보호사한테는 어르신들의 푸념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대화기술이 있다. 건강도 잃고 젊음도 잃은 어르신에게는 긍정적인 생각이 무엇보다 좋은 약이 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칭도 시켜주고 박수도 가르쳐 주다보면 “야야, 네가 하락하는 대로 했더만 걷기가 좀 편타~” 하는 칭찬이 보람으로 돌아온다.

‘떠나가는 꼬막배’를 부르던 집은 시내에서 차로 40분을 달려야 하는 시골이다. 오가는 시간에도 지원이 있으면 좋을 텐데, 현행법은 서비스시간만 지원한다.

“걸어와도 멀미가 나는 길인데, 이모님이 와서 올매나 감사한지 몰라요. 인자는 나가 바보가 돼가지고, 이모님 안 오시믄 고마 눈물만 두둑두둑 흘리고 있을 깁니다.”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꼬박꼬박 ‘이모님’이라 부르며 반가워하고 고마워하는 할머니 때문에 오늘도 박서정 보호사는 굽이굽이 먼길을 찾아온다.

"딸 같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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