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아카데미 4분33초대표 고봉균

매월 2번째 주에는 영화에 사용된 클래식 음악처럼 생활속의 클래식 음악을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아나톨 리트박 감독이 1961년 만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수(離愁)’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상연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우선 출연진의 이름값으로 눈길을 끕니다.

세계적인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인공 폴라 역을, 그녀의 바람기 많은 연인 로제 역으로는 유명 샹송 가수 이브 몽땅이, 폴라를 좋아하는 젊은 변호사 역으로는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미국 배우 앤소니 퍼킨스이 등장합니다. 여기에 원작의 작가인 프랑수아즈 사강이 엑스트라로 출연하면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파리에서 인테리어 프리랜서로 일하는 폴라는 부유한 사업가 로제와 5년째 사귀고 있지만 로제는 폴라와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바람둥이인 로제는 폴라를 두고 틈만 나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데 그때마다 폴라에게는 일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폴라는 인테리어를 의뢰한 고객의 아파트에 갔다가 그 집 아들 시몽을 알게 됩니다. 25살의 청년 시몽은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폴라에게 첫 눈에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시몽은 폴라에게 브람스 교향곡이 연주되는 음악회의 티켓을 주면서 데이트를 신청합니다. 스승인 슈만의 부인이자 열네 살 연상의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가 자신과 오버랩이 되어서 였을까요? 이 글의 제목에서 보시 듯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고 물음표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영화에서 시몽의 대사가 묻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시몽에게는 폴라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같이 있고 싶은지를 알고 싶은 거고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을 제안 해 보는 겁니다. ‘나랑 같이 시간을 보내요. 나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라는 뜻이라는 거죠.

시몽은 더욱 노골적으로 폴라에게 구애를 하고 여러 사건들을 계기로 폴라는 시몽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로제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로제는 자신이 잘못했다며 폴라에게 청혼을 하게 되죠. 폴라는 시몽에게 헤어지자고 말합니다.

폴라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은 시몽이 계단을 뛰어내려 갈 때 폴라는 울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너무 늙었어. 늙었다구.’

폴라는 로제와 결혼을 하지만 로제의 바람기는 고쳐지지 않고 주말이면 혼자 있는 날이 결혼전과 다를 바 없이 자주 있게 됩니다.

어느 주말 폴라와 로제는 주말 외식을 약속했지만 로제는 일을 핑계로 폴라에게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전화를 하고 폴라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화장을 지우며 영화는 끝납니다.

폴라와 시몽이 처음 함께 간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음악이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입니다. 폴라와 시몽의 데이트에서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울렸다는 건 참 의미심장 합니다.

베토벤이 교향곡 9번을 초연한 이후 유럽의 음악가들에게는 교향곡이라는 장르에서 베토벤의 장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2017-08-21 LP로 재 발매/ 1960년대 녹음

브람스가 1번 교향곡을 위해서 2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브람스의 지인이 어느날 브람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왜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나요?’ 그러자 브람스는 ‘거인이 내 뒤로 뚜벅뚜벅 쫓아오는 소리를 항상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게. 그 기분을 자네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걸세’ 라고 대답했다고 하는 군요.

시몽이 넘어야 할 산, 사랑을 위해 승리해야 할 대상이 있는 그런 사랑은 너무나 힘들 것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영화에서는 로제가 시몽의 그런 대상이 아니었을까요? 시몽으로서는 로제의 존재가 사랑을 가로막는 벽이었을 테니까요.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이 들려오지만 폴라가 로제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의미겠지요.

제4악장은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의 영웅적인 승리는 아니지만 ‘승리의 노래’라고 불릴만큼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나 브람스의 음악이 들려주는 승리는 그 과정이 매우 험난합니다. 우수, 번민을 연상시키는 내면적인 표현을 거치야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폴라와 시몽이 음악을 듣는 장면에서 나오는 4악장의 멜로디를 연주하는 악기는 알펜호른인데 매우 평화로운 멜로디가 등장합니다.

원래 브람스는 이 선율에 클라라에게 보내는 헌시를 붙였습니다.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고, 나는 당신에게 천만 번의 인사를 보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의 시구와 비슷한 이 헌시는 사랑에 대한 바라보는 자의 자세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폴라를 보며 ‘보는 것은 괜찮지요?’라고 묻는 시몽처럼 말이죠.

사실 영화에서 먼저 나온 음악은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입니다. 시몽의 데이트 신청을 알려준 자신의 하녀에게 브람스의 음악이 무언지 보여주는 장면에서 3번 3악장이 나옵니다.
마치 데이트를 앞 둔 폴라의 마음을 이야기 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여러 버전으로 영화 내내 3번 3악장은 배경음악으로 사용됩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중 가장 짧은 3번 교향곡은 모두 4악장으로 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3악장은 매우 몽환적이며 아름다운 선율입니다.

반트 지휘/ 북독일 방송교향악단
/ RCA/ 2006-07-11

어쩌면 브람스의 모든 교향곡 악장들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다고도 할 수 있는 이 3악장은 둘의 관계가 ‘교향곡 3번의 길이만큼 짧게 끝난다는 암시’일까요? 아니면 ‘진짜 사랑은 이처럼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한 순간의 꿈 같은 거지만 그래도 한 번은 걸어볼만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걸까요?

브람스 교향곡 역시 각각의 곡마다 명반이 있지만 오늘은 전집으로 나온 것으로 추천해 볼까 합니다. 1960년대 녹음한 카라얀의 그 유명한 명반이 LP로 재발매 되었습니다.

카라얀의 팬이시라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음반입니다. 반트의 브람스 교향곡 전집역시 추천해 봅니다. 반트는 본 전집에서 전통 독일식의 연주를 약간 빠른 템포로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2017-08-21 LP로 재 발매/ 1960년대 녹음
반트 지휘/ 북독일 방송교향악단/ RCA/ 200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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