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냉면 찰떡궁합 부부

운명처럼 오게 된 통영 봉숫골

“어쩌면 운명처럼, 통영에 오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운명을 믿는 편이 아닌데도, 서영주 씨(50)는 통영과의 만남이 운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립고 사랑하는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같은 설렘으로, 남편 백성현 씨(44)는 ‘통영’, ‘봉숫골’이라는 단어를 들은 바로 그날 밤, 무작정 봉숫골로 달려왔었다고 한다. 그리고 운명처럼,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로 결심했다.

행복을 조리하는 냉면집?

영주 씨가 통영, 용화사, 봉숫골 같은 단어를 들은 것은 부산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그룹홈에서 살 때였다. 20대의 젊은날에, 영주 씨는 봉사활동을 하던 엄마를 따라 다니다 배우게 된 수화 덕에 장애인 그룹홈에 연결되어 함께 살게 됐다. 

그 그룹홈 원장님의 팔순 노모가 통영 사람이었다.

“그래 느리바리하게 뭐하노?”

어린 나이에 장애인과 함께 살겠다고 나선 게 대견했던지, 할머니는 통영의 전설인 느리바리영감 이야기며 세병관에서 소학교를 다닌 이야기, 용화사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그룹홈에서 일하던 12년 동안 영주 씨는 그룹홈 식구들과 자주 통영에 놀러왔다. 새파란 바다가 다정하게 안아주는 것처럼 통영은 그렇게 영주 씨에게 포근한 고향이 되었다.

일회용품이 싫어 커피 필터도 직접 마로 만들어 쓰는 영주 씨.

청각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사랑

남편 성현 씨는 여덟 살 때 신장염을 앓고 청각장애인이 됐다. 들리지 않는 게 뭔지 자각하기 어려웠던 어린 꼬마는 어느 날 엄마에게 등짝을 얻어맞고 나서야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가 부르는데 왜 대답을 안 해?”

성현 씨의 엄마는 TV에 몰입해 대답을 안 하는 줄 알고 어린 아들을 야단쳤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서로 알게 됐을 때 온 가족은 충격에 빠졌다. 금세라도 다시 듣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아, 성현 씨의 부모는 성현 씨를 일반 학교에 보냈다.

비장애인들과 함께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니면서, 성현 씨는 또래들 사이에서 혼자 성을 쌓고 소리 없는 세상을 살았다.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잘하는 성현 씨는 혼자 만지고,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

미술대학에 입학한 뒤에야 성현 씨는 수화를 배우며 청각장애인 권리찾기운동 ‘손누리’ 활동을 시작했다. 여섯 살 연상의 영주 씨는 수화 통역자로, 수화 선생으로 만났다.

세계여행중에 냉면을 '그리운 고향의 맛'으로 여기게 되어 냉면 기술을 배웠단다.

2년 반 동안의 세계일주

총명하고 재주 많은 수화 학생 성현 씨가 프로포즈를 했을 때, 영주 씨는 세계 일주를 꿈꾸고 있었다. 국문학과를 졸업해 놓고도 그룹홈 교사를 했던 영주 씨는 뒤늦게 전공을 찾아 독서지도사가 됐다. 그룹홈 아이들을 돕기 위해 시작한 독서지도였는데, 8년 동안 팀이 불어나 후원자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던 것.

아이들을 직접 돌보지 못하게 된 영주 씨는 ‘무한한 재능을 가졌지만 소리 없는 성에 갇힌’ 이 청년에게 자꾸 마음이 갔다. 개인적인 통역의 시간이 늘면서 성현 씨의 재능, 성품을 어떻게 빛나게 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현 씨가 프로포즈를 해 온 것이다.

보통 가정에서 있을 법한 장애인이나 연하에 대한 반대는 없었다. 오랜 봉사활동으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적었던 가정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이미 가족들도 성현 씨를 아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결혼과 동시에 세계일주를 시작했다. 중국 쿤밍을 시작으로 티벳, 네팔, 인도, 아프리카, 유럽, 북미 20여 개국을 돌고 남미의 브라질에 갔을 때 8년 동안 모은 돈이 다 떨어졌다. 귀국할 때는 항공료를 빌려 돌아와야 했다. 2010년에 여행을 떠나 2년 반 만에 한국에 돌아온 것이다.

여행은 사람을 크게 만든다.

여행이 준 선물

여행이 준 선물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값진 것들이었다. 성대가 망가진 게 아닌데도, 소리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말을 잃어버렸던 성현 씨는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라, 성조가 높고 발음은 부정확하지만 더 이상 소리 없는 거울 속 세상을 살지 않게 된 것이다.

성현 씨는 먼저 말을 걸고 웃고 상대의 입을 주목해 의미를 읽어내며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신체장애가 사회적 장애가 되지 않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청소년 시절 그렇게 무겁기만 하던 장애가 벗겨진 것이다.

세계와 나를 생각하게 한 2년 반 동안의 여행.

성현 씨는 결혼하기 전 선박회사의 홍보부에서 안전수칙 같은 삽화를 그렸었다.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 청각장애인에게 맞춤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성현 씨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 그 무엇이라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메뉴판은 사실 태권도장의 상장커버를 이용했다.

손으로 하는 일은 무엇이든 쉽게 배우는 성현 씨는 멕시코 여행 중에 만났던 노부부의 냉면집에서 4년 동안 일했다. 3대째 냉면을 만들고 있다는 노부부의 냉면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내 가게를 열면 이런저런 비법을 더하리라 노하우도 키웠다.

그 냉면집에서는 1년 중 두 달은 성현 씨 부부만 가게 문을 열고 일했다. 그때 냉면을 먹겠다고 찾아온 이가 통영에서 ‘남해의 봄날’ 출판사를 하고 있는 강용상 씨 부부였다.

그이들이 소박하게 만든 봉숫골 지도를 보여 줬을 때, 지도에 나와 있는 통영, 용화사, 봉숫골 이런 이름들 때문에 성현 씨 부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밤 성현 씨는 무작정 봉숫골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곳에 뿌리를 내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시누이가 만든 조각품은 백서냉면 최고의 인테리어 소품이 됐다.

봉숫골 백서냉면

부부는 몽땅 빚을 내 냉면집을 시작했다. 두 사람의 성을 따서 간판은 ‘백서냉면’이라 했다. 페인트를 사서 직접 칠을 하고 집에 박아두었던 소품들을 꺼내 인테리어를 했다. 성현 씨의 미술적 재능이 가게 구석구석에 묻어, 낡은 식당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은 개성 있는 집이 됐다. 깔끔한 음식 맛도 소문나, 꽤 많은 단골도 생겼다. 

이른 아침, 백서냉면 집에서는 정직한 재료로 만드는 육수가 보글보글 끓는다. 세계여행을 통해 지역색 짙은 그 나라의 음식이 사람의 근간 이루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부부는 냉면을 통해 지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우리다움'을 만들어낸다. 

봉숫골 백서냉면에는 두 사람이 뿜어내는 행복 에너지가 가득하다. 

올드한 소품들이 냉면집을 멋스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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