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옻칠을 해서 만든 호쿠야마 대학 코이즈미 타쿠미 학생의 작품. 멀리 견학 온 어린이들이 보인다.

•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전통을 지켜나가는 와지마시의 옻칠

현대사회에서 ‘고비용 저효율’은 설 땅이 없다. 전통공예가 서서히 쇠락하고 있는 것도 이런 현대 사조에 떠밀린 경향이 없지 않다.

와지마누리도 전성기인 1990년 이후 불과 17년 만에 공방의 43%가 문을 닫고, 종사자 53%가 떠나갔다. 고령화, 인구 감소 같은 사회문제와 맞물려 전통문화의 전승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와지마시는 옻칠공예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갖가지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젊은 인재를 확보하고 종사자의 자질을 향상하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으며 해외의 판로를 개척하고 관광자원을 활용하여 와지마로 사람을 불러들인다.

와지마시 칠기조합은 관광객을 위해 공방을 개방한다. 일본에서는 건물이나 가게 출입구에 상호를 쓴 ‘노렌’을 걸어놓는데, 체험을 할 수 있는 공방은 이 노렌에 표시를 해두어 누구라도 칠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조합이 운영하는 전통공예 상점에는 와지마누리의 제작과정과 역사를 알 수 있는 작은 박물관도 만들어 놓았다.

와지마칠예미술관.

와지마칠예미술관의 미래작가 전시회

와지마의 옻칠을 가장 잘 말해 주는 곳은 ‘와지마칠예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에는 일본 옻칠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유물과 국보(인간문화재)들의 작품이 전시된 상설전시관과 시기마다 주제를 바꿔 전시하는 특별전시관이 있다.

오키나와 현립예술대학 시마부쿠로카코의 이 작품은
천을 소재로 하여 옻칠을 했다.

전시실 앞에는 옻나무와 옻액 채취 과정을 반복재생해 주는 모니터, 옻에 관련한 자료를 모두 모아놓은 장서가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때에는 일본의 각 대학 칠예과 학생들의 작품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일본은 주요 대학마다 칠예과가 있는데, 웬만한 대학 칠예과는 보통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곳 학예사는 “칠예과는 오랜 전통이 있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인기있는 학과 중 하나”라고 말한다.

공장에서 분업을 통해 똑같은 그릇을 만들어내는 것과 달리 옻칠 예술 작품은 목공 작업부터 옻칠 작업, 마지막 작업까지 혼자 하게 된다. 스물너덧 살 젊은 작가들이 덧칠과 건조를 수없이 반복하는 인내의 과정을 거쳐 전통을 현대예술로 빚어낸다.

‘쓸모있는 용기(用器)’로서의 옻칠은 인구 감소와 과학의 발달로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지만,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전통으로서의 옻칠, 일본의 정체성을 세계 속에 펼칠 수 있는 예술로서의 옻칠은 오히려 더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내일(來日), 젊은 작가들이 만들어낸 옻칠 작품들은 자유롭고 신선했다. 소재도 나무를 벗어나 종이, 천 등으로 다양했다.

교토시립예술대학 졸업생의 작품. 왼쪽 우츠미 사에코의 작품은 예수의 수난을 입체북으로 만든 것으로
한장씩 펼칠 수 있다. 오른쪽은 '그래도 당신은 나를 보지 않는다'는 제목의 나카타 케이코 作.

통영옻칠미술관의 김성수 관장은 “옻칠은 예술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릇을 그릇으로만 볼 게 아니라 보물로 봐야 전통을 소중하게 되살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잘하고 있는 건 실용품을 만들면서도 그 안에 예술혼을 불어넣고 있는 점이다. 인구가 줄어 공장에 사람이 없는데도, 전통을 명품문화로 만드니 젊은이들은 옻칠을 배운다.

이런 사실은 일본 정부에서 힘을 쏟고 있는 와지마기술연수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와지마칠예미술관에는 옻나무와 옻액 채취 도구가 전시돼 있다.
와지마누리 제조 과정. 와지마칠예미술관.
와지마칠예미술관의 옻칠자료들.

새로운 방식의 장인 양성

인간국보인 와지마기술연수소 마에 소장.

와지마기술연수소는 전액 국비로 운영되는 5년제 전문교육기관이다.

우리나라 인간문화재에 해당하는 ‘인간국보’를 교수진으로 하여 일본 칠예예술을 전수하는 인재 양성기관이다. 이곳을 졸업한 사람들은 인간국보의 대를 이어 각분야의 예술가가 된다.

이전의 장인들은 가업으로 아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거나 제자를 집에 들여 숙식을 같이하며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이들의 기술과 전통이 국가적으로 인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될 때 ‘인간국보’의 지위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이런 도제 방식으로 전통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됐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가족 공동체가 해체되고, 가업은 기업체를 중심으로 한 산업으로 변했다. 함께 먹고 잠자고 생활하며 기술을 전수하던 사회 분위기는 출퇴근하는 문화로 바뀌었다.

와지마기술연수소는 이런 현대의 풍토 속에서 장인의 기술을 후대에 전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67년에 문을 연 이 연수소는 50여 년 동안 인재를 양성해 왔다. 한 학년에 10명 내외, 5년 과정이니 전교생은 50명 내외이다.

놀라운 것은 지난 50년간 꾸준히 학생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지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학생들은 20~30대의 젊은이가 대부분이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의 사회분위기를 생각하면 이것도 놀라운 일이다.

일본 전체에 젊은이가 줄어가는 요즘, 기술연수소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기술을 배우고 있다.

아낌없는 지원, 와지마기술연수소

와지마기술연수소에는 현재 소장인 마에 교수를 비롯한 교수진에 인간국보만 20명이다. 행정직을 제외하고, 교수와 강사 등 지도자가 49명인데 학생은 47명이니 1:1 맞춤 교육이 이루어진다.

2년 동안은 옻칠공예의 전 과정을 다 배우는 기초과정이고, 3학년부터는 재능에 따라 전문과정을 배운다. 나무로 기본 틀을 제작하는 소지과, 천연도료로 옻칠을 하는 칠과, 장식과, 금가루 문양을 만드는 마키에/침금과 중에 선택해 3년을 더 교육받는 것이다.

기초과정에서 연간 4만 엔의 재료비를 내는 것을 제외하고, 이 모든 교육은 전액 무료다. 기술을 배울 마음이 있고 재능이 있다면 나라에서 기꺼이 키워주겠다는 뜻이다. 사용하는 재료가 고가의 옻과 금분인데도, 전통예술을 전수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기회는 외국인에게도 똑같이 열려 있다. 지금까지 미국, 말레이시아 등 외국인이 17명 교육받았다. 이중에 한국인 졸업생도 4명이나 된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도시락, 그릇, 찬합, 쟁반 등 생활 속에 사용되는 옻칠 작품을 만든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은 대량으로 분업해 생산해 내는 와지마누리와는 또 다르다. 전통을 지키는 장인들이 제자들에게 기술을 전수했던 것처럼, 최고의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인간국보의 가르침을 받고,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더 발전시켜 후에는 대를 잇는 인간국보가 된다.

기술연수소 학생들은 졸업할 때 작품을 모두 두고 나간다. 가져가는 것은 오직 기술뿐.

예술은 누리는 것

“생활용품만을 만든다”는 말이 ‘인간국보’나 ‘예술 전승’ 같은 말과 언뜻 매치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예술관과 관련돼 있다. 일본은 예술작품을 ‘두고 감상하는 것’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작품을 쓰고 누리고 즐기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전통문화를 지키고 전수하는 것이 인간국보의 사명이니,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칠기’의 전통을 살리는 것이리라.

마에 소장은 “기술연수소는 일본의 칠예예술을 전승, 계승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전통의 전승 앞에 '효용가치가 있느냐?' 하는 문제는 거론할 필요도 없다. 더디고 손이 많이 가지만,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전통을 후대에 이어나가도록 고도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거의 1:1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기술연수소.
미래작가 전시회. 신사의 천장 안에 춘화를 그려넣은 미술공예대학 후지에다 마사카즈의 발랄한 작품.
미래작가 전시회. 가나자와 미술공예대학 세키 나나미의 작품.

 

키워드

#N
저작권자 © 한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