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부띠끄, 살롱 등 세련된 이름의 미용실이 몇 걸음마다 한 집씩 있는 요즘, 통영 정량동에는 우직하게 ‘이용원’의 이름을 지키고 있는 이발소가 있다. ‘통영장인 이용원’ 김정일 원장(64세).
요기서 조기로 이사를 다니기는 했지만, 김정일 원장은 25년째 정량동에 자리를 잡고 손님을 맞고 있다.

김정일 원장은 거제, 통영, 고성을 통틀어 3명뿐인 ‘이용기능장’이다. 전국에 이발소는 거의 3만 곳에 다다르지만 이용기능장은 150여 명뿐이다. 
미용사 자격증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샵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일 원장처럼 도전하는 열정이 없으면 쉽게 포기하는 게 이용기능장이다.
이용기능장 자격을 취득한 뒤, ‘통영장인 이용원’이라는 간판이 더욱 빛을 발한다.

열일곱 살 소년의 꿈

김정일 원장이 처음 이발을 배운 건 열일곱 살 때다. 통영 용남면에서 나고 자란 김원장은 열일곱 살이 되던 해 1월에 북신동에 있는 이발소 직원이 됐다.

배멀미가 심해 배는 못 타겠고, 기술을 배워야겠는데 철공소보다는 미용 기술이 더 매력있게 느껴져 선택한 길이다.

김원장이 처음 이발소에 들어간 1970년은 대개 이발소에서 숙식을 하며 기술을 배우던 시절이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게 소년의 월급이었다.

“1년 동안은 머리만 감겼던 것 같아요. 그 다음에 좀 잘하면 면도를 하고, 나중에 가위를 들게 하는 식으로 기술을 배웠지요.”

소년은 열심히 주인아저씨의 모습을 지켜보며 기술을 익혔다. 아이들의 머리를 깎는 것으로 시작해 점점 실력을 키웠다.

“잘하네. 소질 있다.”

주인아저씨의 칭찬 한 마디에 벌써 이발사가 다 된 것 같은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4년쯤 되자, 주인아저씨의 기술을 모두 마스터했다. 그러고도 3년, 김정일 원장은 다른 이발소의 책임자가 되어 7년 동안 정든 이발소를 떠났다. 큰 도시 부산에서 기술을 더 익히기도 했다.

정량동에 다시 자리잡게 된 것은 25년 전이다.

동네사람들의 우물가, 이용원

여자들에게도 그렇지만, 남자들에게도 이용원은 동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다.
가만히 앉아 머리를 깎고 수염을 다듬다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이란 옮겨질 때마다 왜곡되고 다른 문제를 낳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김정일 원장의 과묵한 성격은 참 좋은 강점이 된다. 손님이 말을 시키기 전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잘 지키기도 하지만, 말이 가볍지 않기 때문에 단골들은 편안하게 속내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떤 분들은 ‘남자들 머리가 다 똑같지.’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정기적으로 오시는 단골손님의 머리를 만지면서도 생각을 많이 합니다. 장~ 하는 일이지만도 이러면 어떨까, 이렇게 하면 더 나을까.....”

손님을 위한 생각을 하고 깎지, 무턱대고 깎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쩌면 “작품을 한다.”는 마음으로 깎겠다는 김원장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 ‘장인미용실’이라는 간판인지 모른다.

진짜 장인이 되겠다는 꿈

미용기능장에 대한 꿈을 갖게 된 건 7년 전이다. 기왕 하는 일, 제대로 실력을 키우고 제대로 인정받는 이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여는 편이라 시간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김원장은 필기를 합격하고 천천히 실기를 준비해 나갔다.
늘 하던 일이지만 10%대의 합격률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20명이 시험을 보면 그 중에 한두 명만 합격입니다. 실기 종목이 여러 개라, 모두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고, 시간이 임박해 정한 시간 내에 마치는 게 어려웠지요.”

내로라하는 경력자들이 모인 시험이지만, 감독관 앞에서는 모두 떨 수밖에 없다.
시험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기본 5번은 도전해야 한다고 여긴다. 10번씩 도전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만나기 때문에 김원장은 길게 생각하고 도전했다.
그리고 지난 6월, 4번째 도전만에 기능장이 됐다.

“나이 들어서 뭔가 도전한다는 일은 참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자기표현이 서툰 것이 분명한 김원장은 그래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

가운을 벗은 손님이 거울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릴 때 김원장은 행복하다.
머릿속에 그려놓은 그림대로 손님의 머리가 나왔을 때 김원장은 행복하다.
솜씨 좋은 아내가 따뜻한 집밥을 해 놓고 “어서 와.”라고 전화할 때 김원장은 행복하다.

“그냥 행복하게 삽니다. 자부심 갖고 일할 수 있고 집에서 식구랑 같이 밥 먹을 수 있고.”

수년 전, 암수술을 했던 아내는 다시 건강해져 제철나물과 생선으로 밥상을 차린다.
친구들이 아내에게 밥상 홀대를 받는다는 60대이지만, 김원장의 아내는 가족들과 같이 집밥 먹는 걸 좋아한다. 솜씨도 좋아 웬만한 식당 주방장 저리 가라이니, 이 또한 작은 행복의 조건이다.

아침 6시, 일찍 이용원 문을 열며 김원장은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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