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부흥의 시작, 통영옻칠미술관

원주가 일찍부터 장인을 모으고 옻칠을 장려했던 것을 생각하면, 통영의 옻칠 정책은 훨씬 뒤늦은 출발이다. 2006년에 한 개인이 옻칠을 살려보겠다고 뛰어든 것이 통영 옻칠 부흥의 시작이었으니 말이다.
잃어져 가던 통영의 옻칠을 되살려보겠다고 나선 이는 통영옻칠미술관의 김성수 관장이다.

십대시절에 옻칠을 시작한 김 관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을 무대로 70년 가까이 옻칠예술의 길을 걸어왔다. ‘라커’로 번역되어 혼돈을 일으켰던 옻칠을 처음으로 고유명사화하여 ‘옻칠(OTTCHIL)’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세계무대 속에 우리 고유의 옻칠을 인정받았으며, ‘옻칠 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개척자이기도 하다.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미술대학 객좌교수와 숙명여대 미술대학장을 지낸 김 관장은 2006년, 은퇴하면서 받은 퇴직금과 전재산을 털어넣어 통영옻칠미술관을 세웠다.

그 무렵 통영은 90년대 이후 많은 장인들이 조선소나 다른 생계수단을 찾아 떠났고, 얼마 되지 않는 장인들이 남아 어렵게 나전의 전통을 지키고 있었다.
김 관장은 장인들을 연구원으로 불러들여 전통옻칠을 되살리기 위해 애썼다.

나전 끊음질이 특기인 통영나전칠기공예관의 박재성 장인도 1년 동안 연구원으로 참여해 전통옻칠을 익혔다.
박재성 장인은 “캐슈는 옻칠보다 두껍게 칠을 할 수 있는 데다 가격도 60분의 1밖에 되지 않아 7~80년대까지 사실상 거의 모든 공방에서 사용했다.”며, 김성수 관장을 “통영의 은인”이라고 표현한다. 자칫 반쪽짜리 전통문화가 될 뻔한 통영 나전칠기를 완성해 주었기 때문이다.

옻칠미술관이 자리잡은 2006년부터 통영은 다시 옻칠 도시로서의 위상을 찾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밝아지며 깊어지는 옻칠의 광택은 통영 장인들의 나전 솜씨를 더 빛나게 만들었다.

또 다른 대안 옻칠회화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은 단절된 나전칠기의 복원과 현대화를 위하여 아예 예술품으로서의 옻칠작품을 위해 전통나전칠기를 옻칠예술로 승화시켜 자개를 옻칠물감처럼 그림을 그리는 새로운 영역의 현대옻칠회화를 창작하였다.
유화나 동양화를 그리던 작가들에게 옻칠을 가르쳐,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회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노력으로, 이제 “한국적 옻칠회화는 이런 것이다.”하는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김성수 관장은 “현재 우리나라와 중국, 베트남이 옻칠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중국과 베트남은 유화 그리듯이 그린다.”면서 “옻칠의 물성을 찾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양화나 유화와는 차별되는 그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횡렬로 서야 한다.”는 김성수 관장의 주장은 남의 것 카피하지 말고 자기 것을 만들어 다양한 작품이 나와야 상생한다는 뜻이다.
공예, 그림, 장신구, 생활용품 등등 옻칠로 된 갖가지 작품이 예술품으로서 제작되고 저마다의 가치를 발하면, 우리 전통옻칠이 충분히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통영시의 전통공예과

통영시도 2011년에 ‘전통공예과’를 꾸려 독립된 부서를 만들면서 전통공예 활성화에 노력을 기울였다.
장인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장인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행정에서도 느낀 것이다. 전통공예과는 잃어져 가는 통영의 수공예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시책을 연구했다.

전통공예과는 일본 옻칠의 중심지인 와지마시를 방문해 전통공예를 살리고 있는 현장을 탐방하고, 그들의 관공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2013년부터 통영시의 명패를 나전으로 바꿨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주영 더팰리스 4~6차, 동원로얄듀크, 해모로 등 신축아파트에는 나전으로 호실을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옻칠을 배제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통영의 전통공예를 알리고 나전 장인들에게 일거리를 창출해 준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통영나전칠기교실

전통공예과의 성과는 통영나전칠기교실에서 잘 볼 수 있다.

통영나전칠기교실은 2011년 안전행정부 향토핵심자원사업에 공모하여 열게 됐다.
취미교실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문 공예교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업료는 전액 무료이며, 학생들은 목재 재료인 백골과 추가로 필요한 재료만 구입한다.

백골을 다듬고 옻칠을 하고 나전을 배우는 7개월 과정을 한 학년으로 하여, 3년 동안 반복하고 깊어지도록 교육하고 있다.
올해 8기 신입생을 받은 통영나전칠기교실은 해마다 15명 내외의 인원이 교육을 받아 연인원 90명의 교육생을 배출했다.

이들 중 3년 과정을 다 마친 이들은 18명인데, 괄목할 만한 것은 그들 중 13명이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공방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료생들은 크고작은 대회에 도전해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다. 2기 신미선 씨의 경우, 대한민국 공예품 대전 문화재청상과 경남공예품대전 대상을 수상했고 경남관광기념품 공모전 대상을 2회나 받았다.
1기인 천기영 씨도 경남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짧은 기간에 비하면 이런 큰 대회 수상은 놀라운 성적이다.

나전칠기교실의 과제들

그러나 아쉽게도 나전칠기교실에는 남자 수강생이 없다. 나전칠기를 주업으로 삼기에는 경제적 뒷받침이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있는 장인들도 생계가 빠듯한 형편이라, 이제 나전칠기를 배워 생업을 삼겠다고 선뜻 나서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옻칠 제품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수요에 맞는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통영시는 전통공예제품개발사업(2012)과 공공기관 수요제품 개발용역(2013), 관광공예 MD상품개발 아카데미(2016) 등을 실시해 현대적인 디자인의 제품 개발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접근 단계다.

다양한 분야의 장인이 없다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현재 통영에는 백골을 만드는 사람이 없다.
남원이나 고양에서 백골을 사와서 칠과 장식만을 하는데, 이렇게 되면 반쪽짜리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 전복에서 나전을 만드는 섭패장도 현재 한 명뿐이다.

각 단계의 장인, 후학의 교육, 현대적인 상품화, 판로의 개척이 되어야 전통공예는 후대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한국적인 전통공예 옻칠예술

‘한국에 가면 꼭 사야 할 기념품’으로 천년을 이어 내려오는 천연 방부, 방습, 방충의 신비로운 옻칠을 꼽게 된다면 어떨까? 나전을 이용한 한국의 독특한 옻칠 제품이나 옻칠회화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한국의 것’으로 세계인의 머릿속에 각인된다면 말이다. 집집마다 멋진 옻칠작품 하나씩을 들여놓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어떨까?

생활이 안 돼서, 판로가 없어서 떠났던 장인들이 오히려 옻칠작품을 만들러 돌아오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을까?

옻칠미술관의 김성수 관장은 이런 날이 올 것에 대비해 제자들에게 박사과정 공부를 종용하고 있다. 학력을 요구하는 지도자가 필요해질 그 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전통문화 옻칠을 살리려는 시도는 전국 곳곳에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정부뿐 아니라 여러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갖고 갖가지 시책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때 400년 옻칠의 정통을 지니고 있는 통영은 무엇을 해야 할까?

옻칠비엔날레, 가능한가?

통영의 전통문화를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옻칠비엔날레가 논의되고 있다.
강석주 시장의 공약에도 옻칠비엔날레가 있는 만큼, 문화예술계의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들은 예산과 규모 면에서 당장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지금은 타지역의 비엔날레를 탐방하고 그보다 작은 규모의 행사를 실험해 볼 계획이다. “준비는 하고 있지만, 시장님 임기 내에 할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고백인 것이다. 행정으로서는 20~30억이나 드는 비엔날레가 막막할 수 있다.

하지만 통영은 옻칠비엔날레를 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이미 형성돼 있다.
지금까지 외길을 걸어온 나전칠기 장인들이 있고, 그 길을 이어받는 새 세대가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옻칠미술관이 있고, 예술의 경지를 인정받은 옻칠회화 작가들과 작품이 있다.
특히 옻칠미술관은 국제 규모의 옻칠미술 전시와 세미나를 진행한 경험도 많다.
또한 국내와 세계 곳곳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어, 다양한 옻칠 관련 전시와 세미나가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옻칠의 모든 것을 망라할 수 있는 비엔날레

옻칠비엔날레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인 옻칠을 되살리는 강력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비엔날레에서는 옻나무부터 옻칠 도료, 소재가 되는 목기 제작과 옻칠, 나전에 이르기까지 재료와 과정을 보여주고, 다양한 옻칠 작품을 전시하게 된다.

상주에 있는 지천옻칠아트센터는 종이를 기본 소재로 하여 옻칠을 한 다양한 예술작품과 생활용품을 만든다.
우리나라와 중국, 베트남 작가들이 그리는 옻칠회화는 나라마다 독특한 특성을 가지며 새로운 예술로 각광받고 있다.
옻은 또한 항암, 해독에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는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식용으로 사용한다.
얼마 전에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백제 의자왕의 옻칠 갑옷처럼, 천년 동안 변하지 않는 옻의 신비로움을 전시할 수도 있다.

옻칠비엔날레는 장인들이 나전칠기 제작 과정을 재연하고, 화가들이 작품 설명을 하며, 학자들이 옻의 연구를 발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체험전을 통해 옻제품이 얼마나 귀하며 고된 수고로 만들어지는지를 알리면, 옻제품의 높은 가격은 오히려 퀄리티가 된다.

비엔날레의 가장 좋은 점은 산업화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고급담배인 00의 갑에는 박재성 장인의 나전장식이 박혀 출시되고 있다.
옻의 고급스러움과 나전의 화려함에 매료된 어떤 제조회사가 ‘천년을 가는 000’이라는 타이틀로 옻칠제품 로고를 사용하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중화되고 산업화되면 전승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옻칠 비엔날레가 기사화되고, 옻칠작품이 가치있고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회자되어 ‘나도 옻작품 하나쯤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새로운 수요도 발생한다.
비엔날레 준비를 위해 디자인공모를 하면 디자인 분야가, 그에 대한 제품을 제작하면 관련 장인들이 상생하는 결과도 얻을 수 있다.

옻칠비엔날레, 차라리 지금이 적기다

역량은 이미 충분히 갖췄지만, 오히려 시간이 촉박하다.
인간문화재 송방웅 선생이 어느 날 일을 할 수 없게 된 걸 생각하면, 해가 갈수록 노령의 장인들이 없어진다는 것을 걱정 안 할 수가 없다.

통영옻칠미술관에서 숱하게 국제적인 행사를 해온 김성수 관장도 85세다.
세계의 작가들이 통영을 한국 옻칠의 허브로 인식하고 전시회 때마다 두말없이 달려오는 이유는 김성수 관장 개인의 관계망에 의존하고 있는 바가 크다.
옻칠미술관 관계자들은 “시장님 임기 내에” 할 수 없다면, 실제적으로 옻칠비엔날레가 더 요원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예산인데, 당장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면 통영시에서 먼저 시작할 수밖에 없다.
통영시가 의지를 가진다면 5억~10억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통영시가 먼저 뛰어야, 문화재청이나 문화관광부나 경상남도를 움직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옻칠미술관과 전국의 옻칠 전문가를 포함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공무원은 다른 도시의 비엔날레를 탐방하면서 밑그림을 그리지만, 옻칠예술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전문가들에게는 이미 비엔날레의 그림이 있다.
전문가들과 소통하면, 비엔날레도 멀지만은 않다.

우리나라와 세계의 옻칠예술이 한 자리에 모이고, 서로의 작품 속에서 장인과 예술가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새로운 디자인 개발이 이루어지며, 일반인들이 체험을 통해 옻칠의 가치를 이해하고 하나씩 소장하기를 원하는 그림을 그려 보자. 수요가 늘고 교육생도 늘어 전통이 전승되는 상상을 해 보자.

한국에서 옻칠비엔날레를 하게 된다면, 그 개최도시는 반드시 400년 전통을 잇는 통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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