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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동 이야기 1_충신, 효자, 스승의 뿌리 도천동
김선정 기자 | 승인 2018.11.08 10:01
평림1동, 인평1,2동, 도천동, 당동의 5개 마을이 합쳐진 행정구역상 도천동

도천동은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첫 번째 사당인 착량묘와
드높은 학문으로 백성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고시완 선생의 백운서재,
하늘이 감동한 효자 박지순 공이 있어,
충신과 스승과 효자가 나란히 뿌리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동양최초의 해저터널과 통영운하를 통해 해양수산의 길목이 되고,
윤이상기념관을 통해 현대음악의 중심이 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 행정구역 도천동은 우럭개마을의 평림1동과 한실마을의 인평1동, 민점마을의 인평2동, 당동, 도천동 등 5개 동을 합해 놓아, 통영시 동지역 중에 가장 면적이 크다.

도천동의 백운서재

도리동과 천동의 도천동

도리동의 ‘도’와 천동의 ‘천’을 합쳐 만든 이름이 도천동이다.

도리동이라는 이름에서 언뜻 떠오르는 이미지는 복숭아나 배(오얏)다. 하지만 ‘도리(道理)’는 논배미의 옛말로, 이곳에 넓은 논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천동’은 시립박물관 서쪽 일대를 일컫는 ‘새미골’과 두룡초등학교 일대를 일컫는 ‘냇골’의 두 마을이다.

한자로는 샘이 많았던 새미골도 천동(泉洞)이고, 마을 양편에 큰 냇물이 흘러 냇골이라 불린 곳도 천동(川洞)이다.

인평동의 해양과학대학

한실과 민점의 인평동

‘큰 골짜기’라는 말을 한자로 쓰면 ‘대곡(大谷)’ 우리말로 하면 ‘한실’이다. 지금 인평초등학교부터 해양과학대학에 이르는 골짜기는 대곡동, 즉 한실마을이었는데, 1900년에 태평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옛날 주막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된 민점동(민짐)은 1900년에 민양동으로 개칭되면서 인동(仁洞)을 신설했는데,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이들 3동리를 병합하여 ‘인동’의 인(仁)자와 ‘태평동’의 평(平)자를 따서 ‘인평리(仁平里)’라 부르기 시작했다. 인평동은 2011년 도천동과 통합했다.

평림동의 해양소년단 거북선캠프

우럭조개포구 평림1동

우럭조개가 많이 나와 ‘우럭개’라고 불린 우포는 큰 포구인 대포동(大浦洞·큰개), 작은 포구인 소근포동(小斤浦洞·작은개)과 합쳐 평림동이었다. 1998년에 큰개, 작은개의 평림2동은 명정동으로, 우럭개의 평림1동은 도천동에 소속됐다.

현재 우럭개 서쪽으로 해양소년단 거북선캠프가 있다.

우럭개마을 앞으로는 나란히 떠 있는 무인도 두 개가 있는데, 그중 큰 섬을 대망자도, 작은 섬을 소망자도라 부른다. 자식 낳기를 갈망하면서 바라보는 섬이라는 뜻이다.

당동의 착량묘

착량묘의 당동

마을 가운데의 작은 산봉우리에 이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착량묘(鑿梁廟)가 있어 당산이라 불렸다.

사당이 있는 봉우리를 당봉이라 하고 동쪽은 동당동, 서쪽은 서당동이라 했는데, 1914년 두 곳을 합쳐 당동이라 불렀다.

인평동과의 경계에 두 개의 골짜기가 있는데, 여우가 많이 살아서 한실마을 쪽 골짜기는 '큰여싯골', 당동 쪽은 '작은여싯골'이라 불렸다. 당동은 1998년 도천동에 흡수됐다.

충효와 예술의 뿌리가 있는 도천동의 도심

김선정 기자  64440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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