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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선조들의 생활 속 옻칠을 만나다 '지태칠기 되살린 지천아트센터 김은경 박사'
김선정 기자 | 승인 2018.12.04 17:43
지승 육각접시를 만들고 있는 김은경 박사.

강석주 통영시장은 옻칠비엔날레를 하겠다고 공약했다.
어떤 사람은 "나전칠기 기물 몇 개로 비엔날레가 될까?"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나 옻칠의 세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종이옻칠로 요강을 만들어 쓴 선조들의 옻칠제작 기술을 되살려낸 김은경 박사를 통해
다양한 옻칠의 세계를 만난다.

    ▲ 종이역사박물관에 있는
           지승옻칠호리병

‘옻칠’ 하면 무거운 목재가구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옻칠을 목재가구 마감재로만 사용하지 않고 발(주렴)이나 칼자루 등 생활용품에도 두루 사용했다. 나무뿐 아니라 종이를 이용해 베개, 요강, 표주박, 바구니 등 가벼운 용품을 만들어 옻칠을 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종이에 옻칠을 하는 지태칠기는 나무에 하는 옻칠보다 모양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볍기까지 해,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하지만 웬일인지 지태칠기를 만드는 기법은 전수되지 않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그런 물건을 만들어 쓴 사실조차 까맣게 잊혀졌다.

이것을 살려낸 이가 국내 옻칠조형학 박사1호인 상주지천아트센터 대표 김은경 박사다.

김은경 박사가 처음 지태칠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1985년 무렵이다. 종이연구가 김경 선생의 종이 소장품 전시회에서 옻칠 요강을 발견한 것.

한지를 꼬아 만든 이 옻칠 요강은 먼 곳으로 시집가는 새색시가 가마 안에서 소변을 볼 수 있게 한 혼수품이다. 가벼운데다 가마꾼들 귀에 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옻칠을 꼼꼼히 발라 소변이 샐 염려가 없었다.

민화를 그리고 있어 종이함에 관심이 많았던 김은경 박사는 선조들의 지혜에 감복을 했다.

옻칠 베개

한지를 꼬아 엮은 노엮개 기법과 가벼우면서 매끄러운 옻칠의 만남은 그야말로 절묘한 조합이었다.

한지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었던 김박사는 한지에 옻칠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종이제품은 옻칠을 끝없이 흡수해 묵직한 옻칠덩어리가 되었다.

‘종이의 장점은 가볍다는 것일 텐데, 지태칠기가 이렇게 무거워서야…….’

김박사가 옻칠공부를 제대로 시작한 건 2004년 겨울이다. 이미 색이 정해져 있는 기존의 물감과 달리 천연도료인 옻칠은 같은 색을 칠해도 칠장의 온도, 습도에 따라 빛과 색감이 달라졌다. 나만의 색을 구현할 수 있는 옻칠의 매력에 빠진 김박사는 동방대학원대학교에 진학해 옻칠의 물성을 연구했다.

‘한국 옻칠예술의 형성과 그 시원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마음은 늘 지태칠기의 복원에 있었다. 옻칠예술사 연구를 통해서 우리나라 지태칠기의 역사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걸 확인하면서, 그 기술이 전수되지 않은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왜 선조들처럼 안 될까?’

고려와 조선의 지태칠기 작품 90여 점을 확인했지만 맥이 끊긴 지태칠기 제작법은 알 길이 없었다. 얹힌 체증처럼 무거운 숙제를 품은 채 수년이 흘렀다. 어느 날, 옻칠이 종이를 만났을 때와 나무를 만났을 때 다른 점에 대한 감이 잡혔다.

“이렇게 하면 종이의 무게로서 옻칠이 되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우게 됐어요. 그러다가 마침 2014년 서울시에서 연구지원을 해줘서 제가 생각한 방법대로 해 봤지요. 그랬더니 정말 종이가 적당히 옻칠을 먹는 거예요.”

매끄럽고 가벼운 지태칠기 작품의 복원!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던 것만큼이나 엄청난 일이었다.

한지를 꼬아 만든 옻칠 대야와 옻칠 요강

김은경 박사는 나머지 생을 지태칠기의 복원에 다 바치리라 결심하며 2017년 ‘지천아트센터’를 세웠다. 먼지 하나라도 앉지 않을 청정지역을 찾다가, 경북 상주 속리산 끝자락에 둥지를 튼 것이다. 옻칠예술과 무관하던 상주시는 지천옻칠아트센터로 인해 옻칠예술의 신흥지구에 편입됐다.

“지금은 노엮개뿐 아니라 보드지나 한지, 닥섬유에 옻칠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종이로 된 작은 가구들도 만들고 싶고 지태칠기 기법도 전수하고 싶지요.”

김은경 박사는 통영옻칠미술관 행사 때마다 통영을 방문하며 옻칠미술관 작가들과 한 가족처럼 지낸다. 서유승, 최은란, 김미옥, 이진숙 작가가 모두 (사)지천옻칠의 회원이기도 하고, ‘옻칠’에 대한 대화로 밤을 새는 열정이 똑같기 때문이다.

통영에서 옻칠비엔날레를 한다면, 종이로 만든 옻칠 작품을 싸들고 당장이라도 달려와 옻칠의 다양한 세계를 알려줄 요량이다.

단 한 장의 부식도 없이 보존된 팔만대장경

현대는 왜 옻칠을 주목하나?

세상의 모든 물건은 세월이 지나면 낡고 부식된다. 그러나 옻칠은 천년, 2천년, 5천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도 썩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다.

청동기시대의 유물 중에는 칼은 부식됐는데 옻칠을 한 칼집만 그대로인 유물이 제법 있다. 2011년 공주 공산성 저수지에서 발견된 백제 의자왕 시대의 갑옷도 1400년 동안 물속에 있었는데도 썩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돼 우리를 놀라게 했다. 옻칠 도막 아래 가죽은 썩어 사라졌는데, 10회 이상의 단단한 옻칠이 된 표면은 번쩍이는 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공주 공산성 저수지에서 발견된 백제 시대 옻칠 갑옷

고구려 고분이나 낙랑, 백제 고분, 경주의 천마총 등에서 출토된 옻칠 제품을 통해서도, 옻칠이 수천 년을 견디고도 그 빛이 변함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그뿐인가. 고려 시대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팔만대장경 경판도 옻칠 덕에 썩지 않고 보존되고 있다. 산벚나무, 돌배나무 등 10여 종의 나무로 만들어진 8만 1258장의 경판이 70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단 한 장의 부식도 없이 보존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는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칠이 굳으면서 단단해진 도막이 방수, 방부, 방충 등의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옻칠 도막은 내열성, 절연성은 물론 산이나 알칼리에도 강하다.

최근에는 옻칠이 전자파 흡수에 탁월해 전자파를 30~70%까지 차단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옻칠 휴대폰 케이스가 상품화되기도 하였으며, 국내 자동차 업체와의 협업으로 옻칠을 한 자동차 내장재를 연구하기도 했다. 항공기나 선박 등에도 옻칠이 사용된다.

전후 일본은 옻칠 식기를 상용하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위생수준을 끌어올렸다. 옻칠 도막의 효능 때문에 옻칠그릇에 담아둔 밥은 쉬 쉬지 않는다. 더구나 이 신비한 옻칠은 다른 도료와 달리 공해가 나오지 않으며 재생산이 가능한 친환경도료이기 때문에 더 각광받고 있다.

김선정 기자  64440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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