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량경로당에서 만난 81세 멘데마을 터주대감 김용애 할머니가 멘데마을 역사를 풀어놓는다.
“나 어릴 때는 여가 홀빡(전부) 논이었다. 거 뭐라카노, 연뿌리 밭도 있고 미나리밭도 있고 그랬제. 나가 유영초 7회거덩. 학교 갈 때는 논두렁 타고 갔지. 학교 가는 길에 메뚜기도 잡고 그랬다.”
할머니는 멘데마을서 81년 살았다. 멘데에서 태어나 결혼도 이곳 사람과 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옆의 다른 할머니가 거든다.
“메뚜기잡다 논에 빠지고 그랬다. “저가 빠졌는가베. 나는 안 빠졌다." 6.25사변 날 때 나가 열세살 먹었거던. 그때는 저 울로 벵막(병막)이 안 있었나? 돌림벵이 들면 거 갖다놔서 환자가 칸칸이 살고 있었지. 조곰조곰하니 집이 많았다.
나스면(나으면) 나가고, 그 자슥들(자식들)이 살다 나가고 그래가, 인자는 다 몸도 좋아지고 나가고 그래서 다 없어졌지. 벵막(에 환자가 많을 때는 쪼깸(조금) 고쪽(그쪽)을 안 간 택(셈)이지.”  70대 할머니가 조금 더 가까운 옛날 일을 기억한다.
“나는 일루 시집 왔거던. 그때 벵막 옆으루 도랑이 있어서 거서 빨래를 했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돼가 거서 시커먼 잿물 내가, 시아짐씨 빨래하고 그랬으니까 한 50년 됐다. 그때는 환자가 별루 없었다.”

병막은 통제영 시절부터 있었던 것 같다. 돌림병 환자를 집단수용하던 병막과 화장터가 멀지 않은 것도 별다른 치료책이 없었던 슬픈 역사의 한 장면이다.
할머니들은 두룡샘 우물가에서 물긷던 기억을 어제일처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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