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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동 이야기 4] 통제영, 당대 제일의 문화도시가 되다
김선정 기자 | 승인 2018.12.15 13:48

한양에서 천릿길이 떨어져 있었지만 통영은 한양과 직접 연결되는 도시였다.
종2품의 통제사가 한양에서 수많은 수행인들을 데리고 내려왔기 때문에 한양의 문화가 그대로 통영에 전해졌다.
풍악을 울리는 악대가 통제사의 행렬을 이끌었고 손맛 좋은 요리사들이 행렬 속에 있었다.
통제사의 임기는 2년이었지만 1년을 못 채우는 통제사도 많았다.
300년 통제영 역사에 208대의 통제사가 있었으니 평균 1년 반의 임기를 지낸 셈이다.
그러니 통제사가 바뀔 때마다 통영에는 새로운 한양의 문화가 그대로 유입됐다.


7대 이운룡 통제사의 기록을 보면, 새로 임명받아 내려오던 길에 아산에 들러 이순신 장군의 아내인 방씨부인을 문안한 일이 나온다.
이운룡 통제사는 거제만호로 재임하던 중에 조일전쟁을 맞았고 이순신 막하에서 전장을 함께 누볐다.
이순신 장군의 천거로 경상좌수사까지 제수받은 일도 있었으니, 이순신 장군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운룡 통제사가 예단을 올리러 방씨부인을 찾자, 방씨부인은 예단을 거절하며 이런 말을 전했다.
“대장과 막하의 신분이 본시 한계가 엄연한데 저승과 이승이 비록 다르다할망정 예의에는 사이가 없거늘 집 어른의 사당을 지척에 두고 호각을 불며 곧장 들어오는 것이 올바른가?”
이운룡 통제사는 즉시 풍악을 멈추고 사죄했다 한다.
사당을 먼저 찾지 않은 것도 예에 어긋난 일이거니와 사당을 찾으면서 풍악을 울리는 것도 못마땅했다는 뜻이다.
이 일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지만, 통제사와 함께 한양의 음악과 예술이 내려온 것도 엿볼 수 있다.


그뿐인가. 전국의 선비들이 통영갓을 최고로 쳐줬다는 기록에 따르면 똑같아 보이는 갓도 시대에 따라 넓이가 넓어지거나 높이가 달라지며 유행을 탔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통제사와 함께 한양의 패션도 내려왔다.
반상의 구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는 신분에 따라 상차림도 달랐다.
궁궐을 드나들며 궁중요리사의 음식을 맛본 고위관리들은 수랏간 못지않은 음식을 누리며 살았다.
궁중요리에 길들여진 통제사와 수행문무관들은 한양의 최고 요리사들을 거느리고 왔다.
주인에게 최고의 요리를 올리는 것이 임무였던 그들의 눈에 통영의 신선한 해산물과 풍부한 식재료는 어떻게 보였을까? 한양의 솜씨로 통영의 해산물을 요리하니 통제사의 밥상은 임금님 밥상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93대 이수민 통제사를 탄핵하는 사헌부 문건에는 “군사적인 업무는 완전히 폐지하고 요리만 일삼고 있다.”는 죄목이 나온다.
역대 통제사들이 얼마나 통영의 음식에 얼마나 매료돼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눈썰미 좋은 통영의 아낙네들은 통제사를 따라온 요리사들이 한양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수준높은 통영의 음식문화를 만들어갔다.
색색의 고명을 얹은 도미찜이나 특별한 향신료로 조개를 요리한 유곽 같은 음식은 지금도 ‘통제영음식’으로 전수되고 있다.
한양의 최신 유행 문화가 통제사를 비롯한 고위급 문무관을 통해 정기적으로 유입되는 구조 속에서 통영은 독특하고 세련된 문화 양식을 갖게 됐다.
통영에 뿌리내리고 살게 된 하급 장교와 아전들은 이렇게 지방 속 한양문화를 누리며 살았다.
 

김선정 기자  64440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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