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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동 이야기 5] 조선의 조폐공사 '주전소'
김선정 기자 | 승인 2018.12.15 13:51

삼도수군통제사는 행정권, 사법권, 재정권, 군권을 지닌 막강한 권력자였다.
삼남 바닷가 70개 고을은 모두 통제사의 지배 안에 있었다.
통제사의 권한은 화폐 주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세종 초의 기록을 보면 경기도 양근군(지금의 양평군)에 주전소를 설치하였으나 구리와 노동력이 부족해 폐지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기술과 물자 없이 주전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통제영은 무기를 만들어 쓸 기술력과 재력을 갖고 있었다.
영조 정미년(1727년)의 기록을 보면 전국에서 50만 냥을 주조할 방침을 세웠다가 취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 조선의 5개 주전소에 분담된 화폐는 “통제영과 평안감영은 각 15만 냥, 경상감영 10만 냥, 전라감영 7만 냥, 개성부 3만 냥”이었다.
통제영이 가장 뛰어난 주전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도 태평동에는 주전골이 있다.
통제영에서는 어업과 소금업, 선박 등록비 등에 세금을 매기는 해세(海稅)도 징수했다.
영조가 균역법을 실시해 균역청으로 넘어갈 당시 해세는 11만4,300냥이었다.
균역청 전체 세입이 60만 냥이었으니 20%가 통영의 재정이었던 것이다.


통제사는 1년에 두 번 전선을 총집결해 각종 진형을 만들어가며 가상의 일본 해군과 모의전투를 치르는 ‘수조’를 했다.
봄에 하는 춘조는 삼도 수군이 합동으로 했고 가을에 하는 추조는 수영별로 했다.
충청, 전라, 경상도의 수군이 모두 모여 한산앞바다에서 수조를 벌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550여 척의 전선이 통제사의 명령에 따라 학익진, 일자진 등으로 진형을 바꿔가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통제영의 수조는 조정에서도 겁을 내는 대규모행사였다.
만약 통제사가 조선 수군의 90%에 해당하는 삼도수군의 병력을 서해로 몰아 한양으로 진격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제사는  2년마다 교체해 변방에 떨어져 있다는 불만을 갖거나 국가에 대항할 힘을 기르지 못하도록 했다. 
 

김선정 기자  64440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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