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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동 이야기 8] 문예인에 혼을 불러 넣은 호주선교사의 집
김선정 기자 | 승인 2018.12.20 14:19
호주선교사의 집

통영에 호주 선교사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95년이다. 부산을 중심으로 경남지역을 선교하던 호주 장로교 선교회 소속의 아담슨(한국 이름 손안로) 선교사가 첫발을 디딘 이래, 1941년까지 24명의 호주 선교사가 들어왔다. 그중 여성이 14명이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 교육에 헌신했다. 호주의 선교사들은 1902년 욕지도에 논골교회(현 욕지교회)를 세웠고, 1905년 문화동에 대화정교회(현 충무교회)를 세웠다.

근대 개화기의 교회는 ‘기독교’ 이상의 의미를 갖는 곳이었다. 서서히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일제의 야욕 속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젊은이들이 교회로 모여들었고, 이들은 교회를 통해 닫혀 있던 조선의 문을 열고 세계를 바라보았다. 교회는 가난하고 폐쇄돼 있던 조선에 서구문물이 들어오는 통로였으며, 민족의식을 교육하는 현장이었으며, 선진 의료기술이 펼쳐지는 장소였다.

1912년에 들어온 와트슨 선교사 부부와 무어 양은 통영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인 진명학원을 설립했다. 비록 일제의 방해로 보통학교 인가는 받지 못했지만, 이들은 이후 직업학교와 유치원 등 6개의 학교를 세웠다. 1914년에는 의사인 테일러 부부가 선교사로 와서는 호주 선교부 건물에 통영 최초의 근대 의료기관을 세웠다. 일제가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면서 훼방을 놓았지만, 테일러 부부는 1921년 입원실이 2개인 치료원을 개설했다.

일본이나 호주나 근대 조선에 들어온 외세인 것은 똑같았지만, 호주 선교사들이 통영에서 한 일은 일본과는 사뭇 달랐다.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러 왔기 때문에 그들은 한복을 입고 통영사람보다 더 통영을 사랑하며 여성과 아이들 교육에 헌신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통영의 젊은이들은 일찍 세계에 눈을 떴고, 문화와 교육을 발달시켰으며 일본에 저항했다. 그러자 일본은 선교사들이 항일 운동을 했다며 강제로 추방해 버렸다. 1941년의 일이다.

선교사들이 떠난 호주 선교사의 집은 폐허가 되었다. 진명유치원은 도로로 없어져 버렸고, 호주선교사의 집 양관은 1964년 전기누전으로 인해 불타 버렸다. 최근 통영호주선교사기념사업회가 발족돼, 근대 통영의 소중한 문화자산이었던 호주 선교사의 집을 복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호주선교사의 집 터

김선정 기자  64440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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