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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동이야기 12] 통영 공예의 산실이 된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김선정 기자 | 승인 2019.01.01 20:43
▲일사 김봉룡 선생

38선 부근에서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국토의 남쪽 끝 통영에서는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가 문을 열었다.
1945년부터 있던 나전칠기제작소를 도립으로 운영하면서 체계를 갖춘 것이다.
이곳에서는 세계가 인정한 장인 김봉룡 선생이 나전칠기를 가르치고 함경북도 출신의 염색공예가 유강렬 선생이 도안과 제도를 가르쳤다.
옻칠기법은 안용호, 데생은 장윤성, 건칠은 강창규 등 쟁쟁한 교사진을 둔 이 양성소에서는 10여 년간 100여 명의 장인을 배출했다.
양성봉 경상남도 도지사가 소장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책임자는 부소장인 김봉룡 선생이었다.


지금 통제영 가는 길 입구에는 문화동 벅수 바로 옆으로, '김봉룡 선생 살았던 집'이라는 표지석이 남아 있다. 통제영 주변에 흩어져 살던 장인들의 흔적이다.
김봉룡 선생은 우리나라 근현대 나전칠기의 거장이다.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나전칠기를 배운 선생은 청년이던 1925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장식공예품박람회에 대화병을 출품해 은상을 수상했다.
1927년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우량공예품전에서는 금패를 받기도 했다. 암울한 일제시대에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는 11년간 이어오다가 1962년에 충무시(현 통영시)로 이관, ‘충무시공예학원’으로 8년간 존속했다.
1971년부터는 ‘충무시종합공예연구소’로 변경해 1975년까지 이어졌다.
이곳에 이중섭을 끌어들인 유강렬은 함경북도 북청군 사람이다.
1944년 일본미술학교 공예도안과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자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서울 예장동국립박물관 미술연구소 기예부주임과 홍익대 미술학부 공예학과장을 지냈다.  어려운 시절, 통영은 이렇게 예술인들을 끌어안았다.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 졸업사진

김선정 기자  64440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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