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화가 더할수록 인간의 느긋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현대는 대량생산품에 길들여져 엔터키 하나면 곧장 안방으로 뭔가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린다. 광고업계도 마찬가지다.
주문만 하면 뚝딱 만들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소비자의 기대치가 그렇다면 공급자는 따라야 하지만, 만약 감성을 가득 담을 수 있다면 그 온도는 얼마나 따뜻할 것인가. 고객의 마음까지 헤아려 담아서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고스란히 담겼다.
정량동 공설운동장 인근 감성디자인은 그렇게 태어났다.

 

건축사의 꿈, 이젠 디자인 담는다
감성디자인은 둘 다 통영 출신의 정현수(43), 최미곤(41)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패밀리비즈니스다. 3개월만 더 있으면 창업 만2년째다. 정현수 대표는 뜻밖에도 고등학교 졸업 후 20년 넘게 건축사사무소에서만 근무한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건축설계·감리를 담당했던 정현수 대표는 당연히도 건축사가 되는 것이 한 가지 목표였다.
정현수 대표는 “20년 정도 설계·감리를 했지만 고만고만한 건물들만 다뤘는데, 동원로얄골프장이 건설될 때 클럽하우스 건축을 맡으면서 보는 눈이 한 단계 성장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쯤, 그러나 건축사무소도 불황의 여파를 비껴갈 수 없는 상황이 됐고, 그는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살아온 길이 달라도 부부는 닮아간다는데 정현수·최미곤 부부는 안 닮은 듯 닮은 구석이 원래 많았던 모양이다.
그녀도 학교 졸업 후 쭉 디자인회사에서 편집 일을 했으니 말이다.
통영과 거제를 오가면 포토샵, 일러스트, 인디지인 전문가가 됐다.
경력이 5년 정도 쌓일 때쯤 그녀가 제작한 거제복지관 소식지가 품평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면서 칭찬을 받게 되자 고무된 그녀는 이 일을 천직으로 여기게 됐고, 이후 15년을 몰두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첫 주문과 첫 결제의 짜릿함
여느 부부처럼 육아가 장래결정의 중요한 변수가 됐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 그렇게 아담한 사무실을 구하고, 감성을 듬뿍 묻힌 아담한 간판을 내걸었다. 사무실 안쪽에는 아이들을 돌보며 과외도 시킬 수 있는 방까지 있으니 이곳은 바로 패밀리비즈니스의 공간이다.
개업하고 2~3개월 가까이 전혀 고객이 방문하지 않아 내심 불안해하던 어느 날 개업을 앞둔 모 다찌집 사장님이 찾아왔다.
거리를 지나다 평소에 못 보던 감성디자인 간판을 보고 들어온 첫손님이었다.
그는 간판과 썬팅, 메뉴판 제작 등을 모두 의뢰했다. 어쩌면 업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끼리 마음이 통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의욕 넘치는 개업초의 열정을 기대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견적도 제법 높았다.
정대표 부부는 첫 손님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다찌집을 몇 번이나 찾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니, 정말 다행스럽게도 갈 때마다 만석이어서 한번을 빼고는 튕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개척이 80%, 사업 2배 확장의 꿈
부부가 못 잊을 고객이 또 있다.
첫손님이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한 그는 현수막을 주문했는데 견적금액도 8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그 손님은 주문한 그날 바로 결제를 했다고 한다.
감성디자인의 첫 결제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20년동안 누군가로부터 급여를 받던 부부가 자신의 힘으로 벌어들인 돈이었다.
부인 최미곤씨는 “돈을 번다는 기분을 처음 느꼈다”며 “그 돈으로 그냥 맛있는 음식을 사먹고 말았다”고. 이후 이 손님 또한 단골이 됐고, 다른 손님까지 소개해주는 고마운 분이 됐다.

 

첫사랑과의 결혼, 이젠 다섯 식구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 만났다.
영운리 출신인 정현수 대표를 그의 옆집에 살던 여학생이 자신의 친구인 평림동 출신의 최미곤씨에게 소개해 준 것.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10년 넘게 연애를 했고, 이제 결혼 12년차다. 사랑의 결실로 큰딸 서윤(9), 둘째딸 다해(6), 막내아들 시현(3)이 태어났다. 인터뷰를 하는 날에도 사무실 안방에서 방문과외 수업이 한창이었다.
“아이들 3명을 키우는 부분이 창업의 동기가 됐다”는 정현수 대표는 처음엔 드릴작업도 처음이었고, 사다리 타는 것도 처음이었다.
광고제작업 분야는 이미 레드오션임을 부부 대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고객의 80%가 개척손님인 것처럼, 이들은 난관을 이겨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다.
정현수 대표의 건축사무소 경험이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도 한다. 건물을 잘 지어놓고도 간판 때문에 망치는 일을 몇 번이나 봤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이 도시를 아름답게 살리고, 간판이 건물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첫눈에 척 너무 예쁘고 좋다는 소리 들을 간판을 만들고 싶다”는 안주인은 현재 15평 정도인 작업사무 공간을 2배로 늘리는 꿈을 안고 있다.
그렇게 되면 실력파 전 동료들을 캐스팅할 수도 있을 테니까.
간판디자인에 금액의 한계는 있어도 상상력의 한계는 없다는 감성디자인 부부대표.
이들의 꿈과 희망에도 한계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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