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는 시계도 없고, 창문도 없다. 해 저무는 줄 모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을 즐기라는 백화점의 배려(?)다. 클로즈드루프(Closed Roof)전략이란 이와 유사하다. 글자 그대로 지붕은 닫히고, 벽은 둘러쳐져있고, 입구는 하나뿐인 장소에 들어온 이상 나갈 때까지는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

더구나 그 안에는 매력적인 볼거리와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 상품이 풍성한 곳, 바로 놀이동산 같은 곳이다. 아니,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방문하기를 바라는 모든 장소가 해당된다. 통영을 마치 하나의 거대한 에버랜드·롯데월드·디즈니랜드·유니버셜스튜디오로 만들자는 것이 바로 ‘클로즈드루프’ 전략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년 해돋이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다. 수많은 일출명소가 있지만 가장 인기있는 곳은 강원도 정동진일 것이다. 2018년 1월 1일 이곳은 신년 첫 해돋이를 보려는 방문객들로 미어터졌다. 숙박시설은 빈 곳이 없었고, 숙박비는 치솟았다. 2019년 1월 1일 정동진 숙박시설의 41%가 공실로 집계됐다. 값비싼 숙박 대신 신년 첫날 새벽 KTX타고 도착해 일출을 본 다음 되돌아가 버린 것이다. 이날 가장 많이 팔린 것은 KTX역내 커피자판기였다는 말에 마냥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사실 이는 최근의 여행패턴이기도 하다. 남해안 지역으로 여행 오는 김에 이곳저곳 다 둘러보고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으려는 경향이다. 동피랑에서 사진 찍고, 루지 한번 타고, 곧바로 거제로 이동해 바람의 언덕 훑어보고 서울로 되돌아가는 방식인데 이런 관광객들을 하이퍼호퍼(Hyper-hopper=Hyper+grass-hopper), ‘초메뚜기’라고 부른다. 이로 인해 잘 가는 곳은 더 잘 가고, 안 가는 곳은 더 안가는 현상, 관광콘텐츠의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클로즈드루프(Closed Roof)가 필요하다. 테마파크화 된 통영에 관광객이 자발적으로 고립하게끔 선택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에버랜드에 갈 경우 가장 인기 있다는 롤러코스터 타고, 사파리 보고 훌쩍 떠나지는 않는다. 그냥 산책도 하고,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 사진도 찍다가 출출하면 음식도 먹고, 인기 없는 놀이기구도 탄다.

디즈니랜드에 온 것처럼 케이블카도 타고, 루지도 타고, 요트를 타고 제승당도 가보고, 통제영과 달아공원도 가보고, 동피랑뿐 아니라 서피랑도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방문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고, 기념품도 구입하고, 통영음식으로 즐거운 식사도 하는 우리들만의 ‘디즈니랜드식 관광경영기법’을 찾아야 한다. 통영관광개발공사 김혁 사장은 “그 길이 아니면 남부내륙 KTX개통되면 정동진과 같은 꼴 된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은 통영역이 종착역(final destination)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수는 KTX종착역이라는 이점을 받지만, 남부내륙노선은 거제가 종착역이란 점이 통영의 과제다. 이 경우 관광객은 심리적으로 거제에 머물면서 통영을 한번쯤 건너 찾아가는 방식이 되지 이곳에 머물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제해상구간 공사 때문에 1차 개통은 통영까지라는 점이다. 그 전에 통영만의 ‘닫힌 지붕’을 만들어야 한다. 단지 통영의 아름다운 풍광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세대확장을 위한 비일상적인 가치를 발굴하고 제시해서 자발적으로 닫힌 지붕 아래에 모여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닫힌 지붕 아래 배치될 어트랙션은 통영적인 가치와 비통영적인 가치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해양소년단 김용호 처장은 “통영에서 바다를 배운 중고생들이 대학생이 돼서 자기 지역에서 지도자가 된 다음 종종 통영청소년수련관에 단체숙박문의를 한다”며 “음주가 가능한 대학생들에게 숙소를 제공하지 못해서 고성·거제의 사설수련원으로 가버린다. 선순환을 만들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수련원을 리모델링할 기회가 된다면 청소년과 대학생을 공간적으로 분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관광 도시 통영의 또 다른 가치의 하나는 거북선이라고 김혁 사장은 말했다. 그는 “구글에서 영어로 통영의 빅데이타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검색되는 것이 강구안 거북선”이라며 “거북같은 모양을 가진 배가 떠 있다는 시각적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통영적인 가치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김사장은 “함평과 전혀 상관없는 소재라는 이유로 함평나비축제 개최를 다 반대했다”면서 “그런데 성공시키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과감하게도 그는 “도산면과 고성군 사이 넓은 지역에 사파리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며 “투어버스가 아니라 자신의 차량을 직접 가지고 사파리를 하도록 만들면 어떨까”하는 제안을 했다.

전문가들은 강점은 극대화시키고, 단점은 최대한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통영만의 닫힌 지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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