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知識人)이라는 말이 있다. 지성인(知性人)이라는 말도 있다. 두 가지는 같은 말인가? 아니다. 같은 범주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다. 지식인이란 일단 지식이 많은 사람을 뜻한다. 그러니까 누구나 많이 배우면, 속된 표현으로 ‘가방끈만 길면’ 지식인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성인은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지식인이 자신의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는 것은 그저 지식의 나열이나 단순한 정돈에 불과하다. 지식과 지식 사이의 상호관계나 화학적 작용, 또 그에 따른 사회적 책무와 인간 공동체에 인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설명방법을 찾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찾을 지혜가 부족한 사람을 우리는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식인의 진정성이 본시 악(惡)하다고는 할 수 없듯이 반드시 선(善)하다고 믿을 근거도 없다. 그래서 지식인은 곡학아세하기 십상이다. 지식인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공동체의 정의를 해치는 데 앞장서기도 하는 이유기도 하다.

반면 지성인은 숱한 지식의 조각조각을 개별의 것으로 보지 않고 종합적으로 분석 판단하려고 하며, 금력(金力)에 휘둘려서 사회적 약자를 압제하는 곳에 지식을 팔려고 하지 않고, 지식의 옳음과 그름, 가벼움과 무거움을 그 외형과 역학관계(力學關係)로만 파악하지 않아 권력(勸力)에 아부하지 않는 지식인을 일컫는다. 그래서 지성인은 지식인일 수 있지만, 지식인이라고 전부 다 지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두 부류의 결정적인 차이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성인은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알지만, 지식인은 쉽게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식인은 넘친다. 소위 전문가들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전적으로 옳은 것인 양 널리 알려진다. 지식인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믿어버리는 것은 그 자체가 반지성(反知性)이다. 건설전문가, 토목전문가, 환경전문가, 방위산업 전문가, 원자력 전문가 등 온갖 전문가들이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혈세를 빼먹고 있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지식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성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가 집단이 사회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속한 전문분야에 지속적으로 금전이 흘러들어 오도록, 그래서 자신의 전문분야가 지속적으로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하는 데만 몰두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우리는 그런 지식인의 집합이 폭력집단과 유사하다고 해서 ‘마피아’라는 이름을 붙인다. 관료집단에는 관피아, 원자력집단에는 원피아, 재정관련 집단에는 모피아처럼.

언론인으로서 언론기사는 어떤지, 전문가로서의 자격은 어떤지 나 역시 자문해 본다. 아쉽지만 ‘기레기’로 대변되듯 전문가의 탈을 쓴 협잡 지식인이라는 혹평에 뭐라 반박할 답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회경험이 부족해서 일까? 7~80년대에도 사회경험 없는 대학졸업자가 언론사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했지만, 오히려 올바른 언론인의 길을 걸은 이들이 있으니 이도 아닐 것이다.

정보는 많아졌고, 지식도 넘쳐난다. 그러므로 지성에 대한 교육 부족, 성찰 미흡이 아니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여기에 더해 그런 기레기를 솎아내지 못한 공동체 전체에도 책임이 있음을 꼭 지적하고 싶다. 달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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