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궁과의 인연이 시작된 20대 이래 숱한 성취와 좌절 속에서도 김동원 명장(68, 통영전통궁시연구소 대표)을 버티게 한 것은 자부심이었다. 충무공이 가장 아낀 각궁을 내 손으로 직접 제작한다는, 전쟁의 와중에도 활쏘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순신의 의지를 실현한다는, 내가 만든 각궁으로 궁사들이 백발백중한다는 긍지 덕분이었다. 자부심과 긍지로 만든 각궁이 대한궁도협회의 공인을 받음으로써 장군정 사두이기도 한 김동원 대표의 40여 년 각궁 인생은 보상 받았다.

김동원 사두는 그저 담담해 보였지만 각궁에 대해 설명을 할 땐 소년처럼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대나무, 뽕나무, 소뿔, 상수리나무, 자작나무 껍질, 민어 부레, 현줄 등 각궁을 만드는 데는 7가지 재료가 필요하다. 대나무는 메인프레임을 만들고, 아카시아나무는 활의 양끝단인 꼬지를 만든다.

 

20년 각궁제작, 배움의 시간들

소심줄을 7번이나 프레임에 정성들여 놓고(붙이고), 자작나무 껍데기로 활 전체를 입힌다. 접착제로는 민어 부레로 만든 어교를 사용하는데, 싱싱해야 접착력이 좋은데 통영은 민어를 구하기 쉬워 유리하다고. 현은 예전에는 명주실로 했는데 지금은 인조섬유로 한다. 만드는 과정을 말할 땐 마치 각궁과 사랑에 빠진 것 같다.

그가 각궁제작을 하면서 만난 숱한 사람들은 그에겐 스승이었다. 20년 전쯤 담양에서 만난 대나무전문가는 대나무를 불에 굽기보다는 삶는 것이 더 강하고 튼튼한 활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고마운 사람이다.

김동원 사두는 양력 2월이 가기 전에 각궁제작 과정을 마친다. 3월 한 달 동안 건조시키고 4월에 비로소 활 만들기의 최종단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각궁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어렵지 않지만, 명장을 가늠하는 중요한 과정이 활의 상하균형을 맞추는 일과 현을 정확히 중앙에 위치하도록 하는 일이다.

섬세하게 활을 깎아나가며 밸런스를 맞추는 일이다보니 경륜이 없으면 좋은 활을 못 만든다. 좋은 재료에 이어 명장의 손길이 가해지는 이때까지가 각궁성능의 95%를 좌우한다. 이렇게 김동원 사두가 만드는 각궁은 연간 50~60장에 불과하다. 각궁 한 장의 가격은 보통 60만 원 정도라고.

1980년대 초부터 건설업을 했던 김동원 사두가 각궁제작에 본격 뛰어든 것이 2000년대 초였다. 사업에 지친 몸과 마음을 궁도에 쏟아 부었지만 병마가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010년쯤 대장암 말기진단을 받았고 수술까지 마친 뒤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박성호 박사로부터 비타민 주사 치료를 권유받고 항암치료 없이 매주 두 번 비타민 주사를 맞았다. 그의 체질에 맞았는지 한 달 만에 다시 활을 쏠 수 있게 됐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암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가 만든 각궁은 특별하고 우수하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그가 제작한 각궁을 사용한 궁사들로부터의 평가다. 그가 만든 각궁을 공인대회에 사용하려면 대한궁도협회의 공인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2011년부터 매2년마다 협회에 각궁을 출품하며 공인심사를 요청했지만 몇 차례나 회신조차 없었다. 하도 답변이 없어 제작한 각궁을 습사용으로 팔았더니 어느 날 그의 각궁에 다른 공인상표가 버젓이 붙어져서 공식대회에 사용되는 것을 발견했다. 성능이 뛰어난 그의 제품을 누군가가 위조한 것이다.

 

경남최초 공인, 대회출전 가능

결국 올해 8월에서야 대한체육회를 통해 공인인정 소식을 미리 전달받은 김동원 사두는 ‘경남최초’ 대한궁도협회 공인인정이라는 영예에도 덤덤했다. 자신이 수 십 년 배운 기술을 ‘대가도 받지 않고’ 전수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진심처럼 느껴졌다. 다른 종목처럼 끊어지고 멈춰지는 호흡이 아니라 당기는 첫 순간부터 시위를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길고 차분하게 연결되는 호흡의 궁도는 땅과 하늘의 기운을 얻는 스포츠라고 한다. 몸을 꼿꼿이 세우고 매가 사냥감을 쥐듯이 엄지발가락을 구부리는 응조(鷹操) 모양으로 땅바닥을 쥐는 궁도의 사법은 그 자체만으로 전신운동이다.

“지붕의 처마처럼 곡선이 예쁜 것이 각궁만한 것 없다”는 김동원 사두. “가장 많이 맞추는 것이 궁도의 목표는 아니다”는 말에서 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고, 궁도인구가 4만 명이나 되면서도 아직 제대로 사법(射法)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그의 말에서 그의 목표를 짐작할 수 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한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