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우리 동네에 이른바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른바 “우리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사회적 현상 ‘님비(Not in my Backyard)’다.

문제는 그런 혐오시설이라는 것이 대개는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시설 가령 분뇨처리시설, 화장장, 쓰레기소각장, 발전소 등이라는 점이다.

최근의 님비현상은 더욱 심각해져서 원룸임대업자들이 대학교가 기숙사를 거축하려는 것까지 반대하고 나설 정도까지 됐다.

우리 공동체는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오랜 시간 관청이 대민신뢰를 잃게 만든 군사정권문화의 유산일지도 모르고, 주민들의 막가파식 대응일 지도 모른다. 이기주의가 도를 넘어 우리 공동체를 썩어버리도록 만들기 전에 합리적인 해결점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살기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 후손들의 원망을 듣지 않는 고장을 물려주기 위한 출발선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님비현상, 찬반대립의 30년 역사

1987년 미국 뉴욕 인근 마을에서 쓰레기 처리장을 찾지 못해 수개월이나 다른 지역, 심지어 다른 나라까지 갔다가 되돌아 온 사건 이후 이런 현상을 처음으로 님비라고 불렀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현상을 님비로 부르기 시작했으니, 벌써 30년이나 지난 셈이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정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우리 공동체 사회는 님비현상에 있어서 요지부동의 전선(戰線)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아군과 적군으로만 구분해 장기전을 펼치기만 할뿐 종전협상의 테이블에는 앉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지가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님비문제를 해결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돈 되면 환영, 안되면 반대?

님비현상 자체에 짓눌려 투쟁(鬪爭) 일변도였던 시민사회도 학문적으로 발전했고, 현실을 인정할 정도가 됐으며, 행정기관도 해결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욱철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주민 판단에는 경제성이 없는 사업체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좁은 의미의 1차적 님비와, 일자리는 창출되지만 찬반이 엇갈리는 넓은 의미의 2차적 님비로 양분된다”고 분석했다. 이 분류는 혐오시설을 바라보는 지역주민들의 이중적인 시각과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경제성을 보는 주민들의 이중성

가령 쓰레기소각장과 LNG발전소를 대하는 지역주민을 보면 이해된다. 쓰레기소각장은 지역주민들이 보기에 동네에 경제적인 도움이 안 되는 혐오시설일 뿐이라고 주민이 일치단결하지만, LNG발전소는 동네에 경제적인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민과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의견이 극한적으로 대립한다. 전자를 1차 님비로, 후자는 2차 님비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런 구분에 더해 공동체에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회피하지 말고 직시할 수 있어야 함을 지난 님비30년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쓰레기소각장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다면 그럼 어디로 가란 말인가?’는 질문에 우리는 대답할 길이 없다. 돈이 안 될 것 같으면 결사반대하고, 돈이 될 것 같으면 쌍수를 드는 주민들의 이기심도 사라져야 한다.

공간관리 중요성, 선진국서 배워야

이에 대해 지찬혁 대표는 “공간관리가 중요하다. 싱가폴은 님비를 님비가 아닌 방식으로 해결하는 제도를 만들었고, 30~40년 미래를 염두에 둔 도시공간관리계획을 세운다”며 “통영은 폐사어류 등 각종 유기성폐기물 많이 발생하지만, 처리할 공간이 없어 위법하게 매립한다. 이런 일을 감안한 공간관리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비용이 들어도 그 길이 갈등을 없애는 길이며, 결국 돈도 되는 길이라는 것을 싱가폴 국민들은 깨달은 것이다.

언론역할 중요, 소지역주의 경계

그는 더불어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님비현상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동네사람들 문제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통영전체의 일이며, 꼭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이 주민갈등을 줄이지는 못할망정 갈등을 부추기는 기사를 써댄다는 것이다. 주민vs시장, 주민vs업체라는 대립구도는 언제나 섹시한 타이틀과 기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이성만 바탕이 된다면 님비는 갈등 그 자체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왔다.

님비는 민주적 의견수렴의 과정

유순영 과장은 “님비라고 해서 전부 나쁜 것은 아니다”라며 “시민들의 참여의식과 의식수준이 높아지는 것이고, 민주적인 의견수렴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공동체가 활기차게 돌아간다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유순영 과장은 “공무원이 더 연구하고 공부해서 시장에게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며 “선출직 시장은 짧게 4년 길면 12년하고 그만 둔다. 일하는 사람은 결국 공무원이다. 공무원의 역량이 그 도시의 역량”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님비현상은 다양한 의견의 표출로 봐야지, 시장의 잘못으로 비난하면 안 된다”며 “개인적으로 잘못할 수는 있지만 내밀한 부분은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어떤 사안을 대결양상으로 몰고 가서,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결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무 통속적이지만 해법은 대화와 타협이다. 요즘은 노인요양원도 님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욱철 의장은 “선촌마을 H요양원은 ”지역주민이 기획했고, 제일 먼저 주민의 동의를 구했으며, 그래서 별다른 반대없이 지금도 잘 운영된다“며 ”하나의 사업이 시작할 때 누가 어떻게 주민들의 동의와 협조를 구하느냐에 따라 일의 진행방향이 달라진다“고 예시했다.

행정이 대화와 타협 적극 나서야

지난달 24일 통영시가 개최하려던 통영해상풍력단지 개발에 따른 시민토론회가 본토론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파행으로 끝나 버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어민들은 “그동안 수차례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음에도 시청 관계자와 사업자는 우리와 한 마디 상의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시민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은 무조건 추진하겠다는 것이냐. 장난하자는 것이냐?”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적어도 우리 지역에 님비에 해당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대화와 타협, 정성을 다한 설득작업이 우선돼야 함을 우리 모두는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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