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은 대입 수능시험일이었다. 내 딸도 올해 고3이라 이날 수능을 봤다. 2년 전에는 큰놈이 봤었다. 내 아이들은 소위 ‘엄친아’, ‘엄친딸’은 아니어서 흔히 말하는 일류대학은 못갈 것 같고, ‘인-서울’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아빠의 자존심은 있어서 “서울상대 갔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서울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대학에 갔다고 말이다.

나는 학력고사 세대다. 수시와 정시로 나눠지고 여러 조건이 많은 지금에 비하면 굉장히 단순히 대입방식이었는데, 당시 “왜 이렇게 공부만 몰아붙이는 거지?”하는 의문과 함께 어른들을 원망하면서도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기억이 분명 나 뿐은 아니었을 것인데, 안타깝게도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충분히 대입제도를 고칠 수 있는 주류세대가 됐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아이들을 ‘학업경쟁의 전장’으로만 몰아넣고 있다.

우리는 왜 아이들을 대학에 꼭 보내려고 하는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만들면 되지 않을까? ‘고졸’이라는 경력이 남 보기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지만, 지금도 그런 것인가? 고졸은 3D 허드렛일만 하고 대졸은 수월하게 내근 관리직을 할 수 있기 때문인가? 대졸은 돼야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고, 고졸 정도로는 평생 비정규직을 면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알면서도 왜 개선하려고, 그것도 획기적으로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학업부담으로 스스로 생명을 거두는 숱한 아이들의 죽음은 헛되어도 되는가?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나눠서 차별하고, 고졸과 대졸로 나눠서 차별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서 차별하는 우리는 바로 적자생존의 정글에 사는 것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수년전 ‘공시생’의 등장은, 적어도 나에게는, 우리 국가공동체의 미래를 절망에 빠트리는 뉴스였다. 나중에 야간대학에 다니면 되니까 우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고3을 ‘고시생’에 빗대 공시생으로 불렀던 것이다.

우리 기성세대는 우리 아이들에게 ‘네 꿈을 키우고 펼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안그래도 청년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걱정인데, 그 청년들마저 도전의식은 사라지면 우리 국가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래서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다. 대학 안가도 되는 사회는 정말 불가능할까?

키워드

#N
저작권자 © 한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