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체육회 민선회장이 넘어야 할 장애물이 하나둘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사진=2019 전국소년체전/대한체육회>

체육은 인간만의 전유물이다. 인간을 정의하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유희의 인간’을 뜻하고, 생존이 아닌 즐거움을 위해 활동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에 내려진 정의다. 예술 창작 행위, 놀이를 하는 행위 등이 모두 만물의 영장으로써 유희의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달리기, 투포환, 창던지기, 수영 등 애초에는 인간생존을 위한 사냥의 방법으로써 시작된 것이 어느새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나아가 인간에게 즐거움과 상쾌함을 주는 다양한 스포츠로 발전했으며 또 다른 새로운 스포츠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어쩌면 과학기술의 발달로 원시인류의 체력에 비해 힘과 근력이 미약해진 현대인류가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맞아들일 것을 예견한 운명의 선택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석기시대부터 근대까지 인류는 전 역사를 통틀어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으리라 추정되지만, 현대인류만큼 범지구적으로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즐긴 적은 결코 없을 것이다. 건강을 지키는 방편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또는 개인·단체가 추구하는 목표로써의 스포츠는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게 됐다.

통영에는 저변이 없는 스키종목<사진=전국동계체전/대한체육회>

종목간·지역간 스포츠서열화 심각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스포츠는 계급화 됐다. 예전에는 개인이 느끼는 즐거움만 있으면 종목에 구애받지 않았지만, 지금은 소위 비인기종목이라는 신조어의 등장과 함께 스포츠 종목에도 서열이 매겨지고 있다. 그 와중에 인기종목은 인기종목대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바람에, 비인기종목은 비인기종목대로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스포츠 본래의 의미를 잃어 가고 있다. 얼마나 미디어에 담기 좋은 스포츠냐 아니냐가 그 종목의 운명을 가르게 된 것이다.

특정종목 자체의 서열화도 심각한데, 소위 빅리그와 마이너리그로 나뉜 상태에서 미디어와 통신수단의 발달과 지구인이 거의 동시간대에 수준 높은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된 반면 지역화(Localization) 고사(枯死)와 빈익빈부익부로 인해 스포츠 본래의 의미를 찾는 길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국가 간에도 심각한 스포츠 불균형이 존재하고, 하나의 국가 안에서도 불균형이 존재하는데, 통영정도의 도시가 스포츠로 다른 도시와 경쟁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이다.

생활체육 태동과 엘리트와의 통합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소득이 높아지고, 여가시간이 많아지면서 생활체육이 태동했고, 생활체육회의 탄생은 결과를 중시하는 승부보다는 과정 자체를 즐기며 자기성취를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만들어진 자연스런 결과물로 파악된다. 하지만 2016년 생활체육회와 체육회가 통합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생활체육이 활성화돼야 체육(엘리트체육)이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엘리트체육의 성과가 생활체육 활성화를 유도할 것인지 아직 알 수가 없다.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의 결합은 또 다른 한국식 성공모델의 출발선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야 한다. 학원체육의 미래다. 자녀들을 학원으로 내몰거나 명문대학으로의 진학만을 바라는 부모가 자신은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마다 동료들과 생활체육을 즐기면서도, 정작 자녀의 체육전공 선택만은 원치 않는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한국적 현실이다.

스포츠클럽화? 선택 아닌 필수

통영시체육회가 추구해야 하는 바는 성인 생활체육의 활성화와 더불어 학원체육의 스포츠클럽화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통합체육회의 수장을 체육인이 선택하는 민선체육회장 선거는 체육인 스스로를 겨눈 양날의 검(劍)일 수 있다. 체육계와 체육인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지닌 칼의 무게를 못 이겨 주저앉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 칼자루를 내줄 수도 있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을 가진 지성적 체육인이라면 그 정도의 무게감을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부터 지역체육발전은 체육인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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