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발전해 가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는 것은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다. 선생님들이 제자를 가르치는 보람이 바로 그런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 제자 또는 학생이란 것이 젊은이만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제한된 시간만을 살아가는 인간인지라 습득하는 지식 또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교통수단이 많지 않았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한정된 공간’의 개념이 훨씬 광대해졌고, 의학의 발전 덕분에 ‘제한된 시간’도 두 배 정도 늘어났으므로 여전히 배움의 길은 멀고 깊다.
그러할진대 매일 만나도 변화가 없거나 발전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참으로 매력을 느낄 수 없다. 자신의 지식에 안주해 있는 사람은 뒤처지기 마련이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업데이트되지 않은 지식에 매달린 고집쟁이가 되기 십상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고집쟁이와는 즐거운 대화도 불가능하고 신나는 인간관계도 힘들다.
우리가 흔히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는데 사실 보수와 진보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일란성쌍둥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이란 본성적으로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게 돼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지금까지 해 오던 것을 그대로 지키는것, 입증되지 않은 갑작스런 변화를 멀리 하는 것이 바로 보수다.
그러나 안정적인 것만 추구해서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만 하고, 도전을 싫어하게 되면 그것이 곧 수구(守舊)가 돼 버린다.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시대에 뒤떨어지면 매력을 잃고. 향기를 잃으며 빛을 잃게 된다. 결국에는 나라까지 잃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가진 낡은 것에서 고칠 부분을 찾아야 하고, 우리가 지켜온 가치를 더욱 빛낼 뭔가를 개발해야 한다. 보수라는 수레 위에 진보의 바퀴를 달아야 한다. 그렇게 보수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해야 수구가 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답답한 겨울 방을 환기하는 것과 같다. 신선한 공기를 주입해야 실내가 탁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보완적인 개념이다. 신선한 공기를 거부할 이유가 무엇이며, 답답한 겨울 방에 처박혀 있을 이유가 또 무엇인가? 겨울 방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건강을 지키려면 신선한 공기는 필수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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