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제해금강테마박물관 학예실장 유은지

세르비아에는 ‘드라간 다비치 투어’가 있다. 대체의학자로 일했던 ‘드라간 다비치’라는 사람의 행적을 따라, 그가 자주 먹던 팔라친키를 사먹고 이따금씩 그가 저녁에 한 잔 걸치던 미친 집이라는 의미의 ‘루다 쿠샤’라는 가게에 들러서 와인을 한 잔 마시는 투어이다.

드라간 다비치는 아다시피, 세르비아의 전범인 라도반 카라지치를 말한다. 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대통령이었던 그는 내전 당시 인종청소를 직접 지시했다는데, 막상 투어를 가보면 그가 자주 가던 ‘루다 쿠샤’의 주인은 여전히 라도반 카라지치가 국가의 영웅이라고 주장하고, 가이드는 엄숙하게 그가 나토의 정치게임에 희생된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사실 공정한 여행을 실천하고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엄숙한 기분으로 시작한 세르비아 여행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드라간 다비치 투어’를 하고 나니,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세르비아 사람들은 다들 인종청소에 찬성하는 괴물로 보이기까지 한다.

며칠 간의 체류 끝에 세르비아를 그렇게 단정 지으려는 찰나, 내가 보게 된 것은 어느 박물관 전시였다. 우연히 거리를 걷다가 들어가게 된 그 박물관의 특별전시실에서는 마침 실험적인 사진전이 개최되고 있었다. 발칸 반도의 각 민족들을 집과 일하는 모습, 삶의 양태를 사진으로 담은 것이다. 그 전시는 여러 민족들을, 그 민족 자체가 아니라 보편적인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인간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듯,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그 전시를 보면서 나는 세르비아에 대한 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는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이 나라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박물관에서 마주하게 된 전시라는 것은, 어떨 때는 그 사람의 생각을 바꿔줄 수도 있는 법이다. 특정한 공간 속에 배치된 의미없는 물건과 그림이 그 속을 걷는 이들에게 경험보다 더 깊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비현실의 체험인 박물관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바꿀 수도 있다. 세르비아에 대한 나의 인상을 바꿔놓았듯, 박물관이라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지난 14일 문화체육관광부 내에 박물관정책과가 본격적으로 신설되었다. 박물관정책과의 신설로, 앞으로 공·사립 박물관과 대학 박물관에 대한 다양한 정책이 나올 것이라고 점쳐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국의 박물관도 앞으로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정책이 나오건 간에, 박물관이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고 인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데에 일조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박물관을 만드느냐, 없애느냐가 아니라 그 박물관을 통해 바뀔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닌가.


저작권자 © 한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