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4월 총선(總選)으로 시작해서 12월 대선(大選)으로 마감되는 선거의 해다.

지금 여야정당 대통령 후보들과 무소속 후보 등 3룡(龍)은 저마다 승리를 확신하며 광폭 민심행보를 하고 있고, 시민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매일같이 주목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가 최고의 정치제도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국민의 대표를 뽑거나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여긴다. 다수결로 결정 되는 선거에는 오류가 거의 없으며, 설사 있다손 쳐도 그 오류는 충분히 감당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거를 하면서 시민들이 종종 잊는 것이 있다.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선거는 최선(最善)이 아니라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에는 사실 두 가지 의미가 깔려있다. 일단 정치권에 대한 굉장한 불신감이 그 바탕에 있다. 선거판에서는 최선의 인물을 찾을 수 없다는 자조적(自嘲的)인 심리가 하나다.

다음으로 이 말에는 민주적인 선거가 지향하는 키워드가 숨어 있다. 어째서 차선(次善)이 아니라 차악(次惡)인 것일까? 선거철이 되면 상대진영에 대한 네가티브 공세가 더욱 거세진다. 후보들의 훌륭한 점들은 부각되지 않고 나쁜 점들만 눈에 띄고 귀에 들어온다.

그러면 시민들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 같다”고 말하면서 정확한 평가 없이 대충 투표하거나, 염세주의에 빠져 정치에 무관심해 진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된다.

가령 50점 짜리 A후보와 60점 B후보가 있다면 60점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A후보가 70점 후보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고, 또 다음 선거에는 B후보가 80점 후보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 아닌가.

“100점 만점후보가 없다”고 투표를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않고, ‘더러운 정치판’은 쳐다보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태동한 고대 아테네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가의 하나인 페리클레스. 그는 조국 아테네에 대한 자부심으로 ‘페리클레스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가난을 인정함을 수치로 여기지 않지만, 빈곤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함은 부끄러워 한다”는 균형감 있는 사상을 갖춘 정치가인 그가 남긴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곳 아테네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은 조용함을 즐기는 자로 여겨지지 않고, 시민으로서 무의미한 인간으로 간주 된다.”
<김숙중 기자 64440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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