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허장완 열사 생가터 보전돼야


도천동 새도로 건설 재고를...
-윤이상·허장완 열사 생가터 보전돼야 

3.1 독립운동 유공자 허장완 열사는 감옥에서 혼자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모진 고문으로 21세의 꽃다운 나이에 한을 품은 채 1919년 10월 9일 옥사했다.

3월 13일 남망산 공원에서 거사할 것을 결의하고 준비에 착수하다 3월 10일 체포된다. 허장완 열사의 시신은 배편으로 마산에서 통영으로 옮겨졌는데 마중 나온 면민들의 통곡과 간간이 만세소리로 뜨겁게 달아올랐다고 한다.

통영 법원 인근에 그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지만 일제에 의해 훼손된 채 방치됐다. 허장완 열사의 친형인 허승완 장군을 아는 이도 많지 않다.

1920년대 북만주 등에서 조선의용군을 조직해 항일투쟁을 한 인물이다. 김해 허씨 진사공파 허 은의 아들로 1894년 태어나 3.1운동 열사 허장완의 친형이다.

그는 1919년 4월 김청봉 등과 조선의용군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지휘했으며, 1년 2개월간 군세가 확장돼 6개 대대의 큰 규모로 편성하고 활동무대를 연변의 화룡, 왕칭, 훈춘 지역까지 확대했다.

추용호 소반장인과 윤이상 생가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두 형제가 태어난 허승완·허장완 열사 생가터 비석의 위치를 아는 이는 적다.

도천동 새도로를 뚫기 위한 예산 26억을(보상비 20억 포함) 투입해 178m 길을 내면서 허장완 열사 생가터 일부도 포함돼 예정대로 공사가 진행되면 도로에 묻히게 된다. 허장완 열사의 후손인 허만기 3.1 운동 유족회장은 이미 다른 이의 소유인 생가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며 안타까움도 전했다.

그럼에도 새도로는 심사숙고해야 된다는 지적이다. 통영시 도시과에 따르면 법원의 명도소송 판결 후 새도로(안) 공사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추용호 소반장은 집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도천동 새도로도 다시 한 번 심사숙고 해야 한다는 문화예술인들의 의견도 땅에 묻힐지 걱정이 앞선다. 11월 3일 윤이상 작곡가의 추모일이다.

 


저작권자 © 한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