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두 통영시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


며칠 전 지역의 봉사단체인 ‘통영청실회’ 주최로 중증장애인 10명과 경주나들이를 다녀왔다. 20명의 봉사자들은 사전 준비를 했지만 출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휠체어에서 버스에 오르기까지 힘이 센 봉사자를 찾아야 했고 장애인을 안아서 이동하는 방법도 낯설어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관광지와 휴게소를 들르기 위해 버스에 여덟 번을 오르내렸는데 가족 중 근력이 있는 가족이 없으면 장애인의 이동권이 심각하게 제한됨을 몸소 느꼈다.

이처럼 장애인은 쉽게 이동할 수 없어 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가지지 못하고 다양한 사회경험을 가지지 못함으로 직업선택도 장애를 겪는다. 이동권이 곧 취업과 경제상황으로 이어지는데 우리나라 장애인가구가 경제적 빈곤에 처할 위험은 비장애인가구보다 2.4배나 높아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동권이 제한되니 또 다른 가족 중 한명이 직접 케어를 해야 하고 경제 활동인구는 당사자 포함하여 2명이나 줄어드는 셈이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인구대비 취업자 비율이 16%로 원천적으로 취업은 어렵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기관과 기업은 장애인의무고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공공기관 280곳 중 48.5%에 해당하는 136곳이 의무고용율(2.7%)을 지키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국회도 포함되어 있어 우리사회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럼 왜 장애인의무 고용률을 채우지 못하는 것일까? 답변은 ‘적합한 사람이 없거나 장애인이 일할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사유를 들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편견과 차별이 만연하다.

뇌병변장애의 경우 기획업무나 전산업무를 잘하는 장애인도 많다. 그러나 취업을 막는 건 우리시대의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성급한 동정심이다. 오히려 조선시대에는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능력이 있으면 미관말직에서부터 정승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세종대왕때 좌의정까지 오른 허조(許稠)는 척추장애인이었고, 우의정까지 오른 권균(權鈞)은 간질장애인, 윤지완(尹趾完)은 지체장애인으로 우의정이 되어 ‘일각정승(한쪽다리의 정승)이라고 불렸다.

이 밖에도 정승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분야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중증장애인이든 경증장애인이든 차별을 두지 않았는데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입법기관인 국회에서부터 장애인의 생존을 막고 있다. 자아실현과 행복추구권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기본권이다. 저상버스가 없어 장애인을 힘겹게 안고 버스에 올라야 하고, 경사로가 없는 식당이나 관광지에서 장애인 한명당 두명의 자원봉사자가 함께해야 하는 청실회 회원들의 봉사활동이 큰 보람도 있었지만 부끄러운 우리를 본 것 같았다.

이동권은 생존권이다. 개인이 가지는 장애보다 우리사회가 막아놓은 ‘사회적장애’가 중복장애가 되어 더욱 힘들게 한다. 우린 언젠가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먼저되고 나중되고의 차이일뿐. 지금 우리가 ‘사회적장애’를 없애지 않으면 우리 또한 중복 장애를 겪을 수밖에 없다. 혼자 버스를 탈 수 있고 혼자 여행을 갈 수 있으면 장애는 줄어든다. ‘니나 나나’ 함께 사는 삶. 7,500명 통영시 장애인이 ‘니나 나나’ 편견없이 함께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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