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수문 설치해 수중 다이버 해양 체험, 꿈같은 현실 이뤄지길”

노대도 주민은 노대도 양 바다를 수문으로 막아 해양레포츠 체험 섬으로 되길 희망했다. 그럼에도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실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했다.

참치 양식의 최적 수온지, 일제시대 수산물 가공 공장 존재
1885년 흉년으로 기근 피해 이태지 씨가 최초 정착 가능성 확인

 

하노대 낮은 언덕을 올라 상노대와 하노대 사이 바다를 보니 사량도 바다 물 흐름과도 닮았다. 고구마가 자라고 있었고 오래전에 설치한 전선주와 최근에 연결한 전기선은 확연히 표시가 났다. 농사용 물을 저장하는 콘크리트 저장시설이 자리잡고 있었다. 산을 내려오니 김두선(70) 하노대 하리마을 주민이 집 앞마당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이영희(76)씨로 김 씨의 친정은 욕지도이다. 이 씨는 면서기로 퇴직했다. 부인 김 씨는 “아들과 딸은 서울에서 생활한다. 남편이 퇴직 후 가두리 양식을 하다 큰 돈도 벌어봤지만 실패할 때가 더 많았다. 남편은 공직에 있어서 그런지 집에 컴퓨터가 있다”며 자랑을 했다. 남편 이씨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강효래(69) 하노 하리마을 이장은 “마을 창고가 태풍으로 피해를 입었고 정비해야 한다. 등기부등본이 명확하지 않아 애로를 겪고 있지만 욕지면장과 통영시청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가능하다.”고 했다. 하리마을은 14가구 26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강 이장은 일본 어류 수출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해 왔다. 섬에 취직한 이후 정작 노대도에 눌러 앉게 됐다. 그는 제일상공회사인 제일무역 근무 시절도 전했고 이는 부산에서 제일 큰 구 제일극장 사장이었던 김억출 씨가 운영한 회사라고 했다.

강 이장은 “참치 양식은 수온은 최적이지만 고압선으로 인해 참치 발육에 저해요소가 있다. 톳나물 재배로도 수익을 올리고 있고 노대도는 수산전진기지로써 통조림 가공공장도 일제시대때 존재했다”고 했다.

노대도는 인근 욕지항과 함께 남해안 어업발전의 주역이었다. 노대도 항만 가득 가두리 양어장을 설치해 도미, 우럭 등 고급 어종을 길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수입정책과 과잉생산으로 어가가 하락하고 사료비 인건비가 비싸 삼중고를 겪고 있다.

마을 주민 강효원 씨는 “노대도 양쪽을 수문으로 막아 어류들만 지나가게 한 후 수중 다이버 등 해양 체험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이는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결코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노대도를 찾는 낚시꾼들을 위한 가이드 역할도 하고 있었다. 또한 “가두리 양식의 수익이 좋지 않아 시름이 깊어진다고 했다.” 노대도 앞 바다 상하도를 사이에 흐르는 바다 수심도 최저 3m최대 18m 내외이다. 연대도처럼 노대도 연도교 설치는 육지와 지리적으로 가깝지 않아 정기여객선으로 2시간, 사선으로는 1시간 걸려 내방객들이 많을지는 고민해 봐야 한다는 주민 의견도 있었다.

노대도 주민 입주 역사를 보면, 1885년 2년간 흉년으로 기근이 심해 고성권 신월리에 살다 추도에 잠시 이주해 있던 이태지가 노대상리마을에 당도해 정착 가능성을 살폈다. 멧돼지와 사슴 등이 서식했고 인적은 없었다. 공중겸, 한명찬, 강중여 부부 등 7세대 25명이 정주했다. 1950년대에는 40세대 이주자와 1976년 80여 세대 380여 명의 인구로 번성했다. 1910년대 개간 작업으로 보리 밀 옥수수 콩 등을 재배했다. 이후 쌀보리 고구마가 보급됐고 1960년대부터 마늘을 심게 됐다.

일제시대 어망어업의 발달로 챗배 들망 등 조업을 했다. 1980년대 장어통발, 낙지주낙 등이 성행했다. 어촌계마을 공동어장에는 톳, 전복 등을 나잠어업과 연계해 관리하고 있다.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차츰 전환되고 있다. 가두리 양식은 마을의 기간산업이다. 지난 1945년 5월 15일 노대초등학교가 개교했다. 1978년 2월 동력발전으로 전기를 사용하게 됐다가 1986년 7월 해저 케이블을 통해 전기가 들어왔다. 1970년 탄항 마을에 부산 무선국 노대분국을 설치해 첫 전화통화를 하게 됐다. 한 번 전화를 하기위해 1.5㎢ 제를 넘어 통신 가능 시간을 기다렸다. 1984년 한국 전기 통신공사 노대분국을 개설해 수화기는 30대로 늘려 가정 전화의 시초가 됐다.

식수는 1975년 10월 15일 준공된 상리마을 보물 제1호 우물이다. 가뭄에도 2m 수위는 항상 유지하고 있다. 2006년 욕지도 청사에서 노대간 해저관료를 설치해 노대 4개 상리 하리 산등 탄항 마을에 물이 공급됐다.

강효래 하노대 하리마을 이장
김두선(70) 하노대 하리마을 주민
추기원(우측)씨와 강재읍 부부는 슬하에 딸이 4명 아들 하나 다섯을 낳았고 손녀와 손자 등 23명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두 부부만 섬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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