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노대 산등마을 전경. 상노대에는 산등, 상리, 탄항 마을 등 3곳에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청정지역이라 관광객보다는 낚시꾼들의 입도가 잦다.

섬 보물은 물, 노대도 상리마을 보물 제1호는 우물

1975년 욕지도 청사와 해저관료 설치해 노대도 물 부족 해갈
청정지역, 낚시꾼들의 입도가 잦아 주민들의 주요 생계 수단

물과 전기와 전화는 섬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다. 섬에 물과 전기가 들어오고 전화기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본격적인 바다 양식도 가능하게 됐다. 상노대 상리마을 보물 제1호는 우물(사진)이다. 이는 지난 2006년 욕지도 청사에서 노대도 간 해저관료를 설치해 상하노대마을에 물이 공급되면서 물부족을 해갈했다. 개통 이전 주민들은 마을 우물은 주민들에게는 보물이었다.

청정지역이라 낚시꾼들의 입도가 잦아 이는 주민들의 주요 생계 수단이 되기도 한다.

노대도는 백로가 둥지를 틀고 서식하는 섬. 6,700년 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인 조개패총이 발견돼 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학술적 조사가 이뤄진 섬이다. 태풍이 불어 땅속에 숨겨졌던 인골과 조개무덤이 세상빛을 발했다. 1970년 대 이후부터 발굴이 됐으나 연대도에 불어닥친 셀마호의 위력은 폐이도 골종이라는 잠수병을 지닌 인골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신석기 시대 현재 통영 지역에 거주했던 사람에 대한 학술적 조사가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흑요석은 일본 큐슈 북동지역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돌로써, 그리고 발목에 차는 조개 더미가 발견돼 남쪽에서 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는 연구자들의 논문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특히 노대도 중석기시대 세석기 출토는 이보다 앞서 7,000여년 전 이곳 정착민 거주를 유추해볼 수 있다. 상리마을 폐교됐으나 학교의 재활용도 필요하다는 김석진 이장의 바람도 있다.

노대도 주민들은 바다 수문을 설치해 수중 다이버 해양체험이 이뤄지길 바랬다. 참치 양식 최적지 이자 낚시꾼들의 발길이 잦은 청정지역이다. 하리 마을은 14가구 20여명 상리마을은 100여명, 산등마을과 탄항 마을을 포함해 4곳의 마을을 바다랑호가 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다. 산양읍 당포항(구 삼덕항)에서 출발하는 낚시배를 이용하면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상리마을 김석진, 하리마을 강효래, 산등 정민안, 탄항마을 김종근 이장이 마을을 책임지고 있다.

일제시대 어망어업의 발달로 챗배 들망 등 조업을 했다. 1980년대 장어통발, 낙지주낙 등이 성행했다. 어촌계마을 공동어장에는 톳, 전복 등을 나잠어업과 연계해 관리하고 있다.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차츰 전환되고 있다. 가두리 양식은 마을의 기간산업이다. 지난 1945년 5월 15일 노대초등학교가 개교했다. 1978년 2월 동력발전으로 전기를 사용하게 됐다가 1986년 7월 해저 케이블을 통해 전기가 들어왔다. 1970년 탄항마을에 부산 무선국 노대분국을 설치해 첫 전화통화를 하게 됐다. 한 번 전화를 하기위해 1.5㎢ 제를 넘어 통신 가능 시간을 기다렸다. 1984년 한국전기통신공사 노대분국을 개설해 수화기는 30대로 늘려 가정 전화의 시초가 됐다.

식수는 1975년 10월 15일 준공된 상리마을 보물 제1호 우물이 있다. 가뭄에도 2m 수위는 항상 유지하고 있다. 2006년 욕지도 청사에서 노대간 해저관료를 설치해 노대 4개 상리 하리 산등 탄항 마을에 물이 공급됐다.

다음편에는 두미도 남구와 북구로 떠나보자.

하리마을 주민이 마늘을 수확해 손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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