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도 옛 이름은 ‘박도’, 국태민안 기원하는 망제

 

옥녀봉에서 바라본 금평리

옥녀봉 ‘사랑’에서 뱀이 많다해 ‘사량’ 구전 설화
만호진은 종4품 조선수군 장교가 거북선 1척 운영

오는 9월말 길이 530m 상하도 잇는 연도교 준공

사량도 옛 이름은 박도,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망제가 열렸고 옥녀봉 설화 ‘사랑’과 뱀이 많다해 ‘사량’ 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곳 만호진은 거북선 1척을 운영한 조선수군 종4품 장교가 진을 친 곳이다.

사량도 상도와 하도를 잇는 길이 530m 연도교는 오는 9월말 준공된다. 도산면 가오치항과 사량도를 잇는 뱃길은 사량수산업협동조합(이형석 조합장)이 운영하고 있다. 고성 용암포와 사천에서도 선박이 오간다. 이형석 조합장은 연도교가 완공되면 마라톤 대회를 유치할 계획이다. 사량면 제7기 주민자치위원들이 지난 2013년 편찬한 ‘사량면 기억에서 기록으로’를 참조하면 머물고 있을 청춘인줄 알았지만 매일 이별을 고하며 살고 있는 사량면 주민들이 직접 수록한 지명. 섬 주민들의 뭍의 풍성함에 비해 조금은 보잘 것 없지만 국토의 변방에서 알아주는 이 없어도 기록하고 기억해냈다. 이 곰탁 저 곰탁 마을의 지명과 유래를 기록하고 편집한 것.

사량도는 금평리 진촌마을, 옥동, 사금 대항. 돈지리 돈지마을, 내지, 답포, 수우도가 있다. 읍덕리는 덕동마을, 묵방, 읍포. 양지리는 외지마을, 능양, 백학으로 행정구역상 나눠져 있다. 거제 혹은 고성의 한촌으로 오랫동안 역사의 뒤안에 묻혀 지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1604년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두룡포에 삼도수군 통제영을 이설하면서 역사가 기록된다.

사량면은 서쪽 해역에 위치한 사량도 및 수우도를 중심으로 한 도서지역이다. 옛 이름은 박도였다. 고려시대 박도 구당소가 있어 봄과 가을로 고성 수령이 남해의 호국 신에게 남쪽 변방의 보전과 함께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망제를 지냈다. 조선초 박도는 인접한 구랑량 만호진의 수군 및 병선의 초계 정박처가 됐으며, 섬에 영전을 일구어 병사들이 내왕하며 경작했다.

사량 만호진이 설치되고 성종 21년(1490) 사량진성을 축성해 진영의 위용을 갖췄다. 만호진은 종4품으로 거북선 1척, 장교 6인 사부 18명, 화포 10명, 포수 24명, 타공 6명, 격 110명, 군량미 40석, 등 병선 1척에 장교 1인이 탑승했다. 임진왜란때 호남과 영남 해역을 이어주는 조선수군의 거점이었다. 조선초 고성 현 서하리, 후기에는 고성 현 하일면에 각각 속했다. 광구 4년(1900) 이 고장이 고성군에서 진남군으로 분리되면서 사량도를 따서 진남군 사량면, 1909년 용남군 사량면으로 불리우게 된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사량면과 원삼면(지금의 욕지면)을 통합해 원량면으로도 불리게 됐다. 광복 후 1955년 분리해 욕지면과 사량면으로 나눠지고 1955년 통영군과 충무시의 통합에 따라 통영시 사량면이 된다. 긴 뱀처럼 구불구불한 형세를 이룬 것에서 유래해 이 해협을 동강이라 일컬었다. 옥녀봉에 얽힌 비련의 설화에서 연유돼 사랑이 사량으로 변한 설과 뱀이 많이 서식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지리산은 돈지리와 내지리에 걸쳐있는 해발 398m 산이다. 독사가 많고 너덜이 많다해 일컫게 된 지명이다. 옥녀의 전설이 있고 불모산(옥녀봉, 연지봉, 가마봉, 월암봉, 달바위)와 지리산으로 구분되며 7km 산행을 5시간 정도 걸어야 된다.

수우도는 돈지리 구역의 섬이며 암벽 등반을 즐길 수 있다. 상도 일주도로는 17km이다. 하도는 19km. 해동지도 속의 사량도(보물 1593호 1776년경 제작)와 대동여지도 속의 사량도(보물 850호 1861년 제작)가 있다. 사량진도는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다.

사량도 정기 여객선 뒤로 오는 9월말 개통예정인 길이 530m 상하도 연도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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