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소장, “일본 문부성 장학생 학자들 중심, 일본 입장 반영”

담기양이 동북공정 일환으로 작성한 중국의 역사지도집 <삼국 위 유주>에는 중국의 조조가 세운 위나라가 경기도까지 점령한 것으로 표기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국비 47억여 원을 받아 작성한 동북아역사지도의 <위.촉.오 221~265> 지도를 보면 중국 담기양이 동북공정 일환으로 작성한 중국역사지도집을 표절해 위나라 유주가 경기도까지 영역을 점령했다고 그렸다.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지난 8월 발간 주목

국정교과서 문제로 인해 정치권이 시끄럽다. 국민들의 갈등도 찬반으로 나뉘면서 깊어지고 있다. 해묵은 이념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지난 8월 펴낸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만권당)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 11월10일 저자인 이덕일 소장의 허락을 받아 책 내용을 토대로 간추려 몇 번에 걸쳐 게재코자 한다.

이번 국정화 문제도 일본의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역사학자들과 귄력층의 지원 아래 이뤄지는 것이 같은 맥락이라는 것.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는 일본의 식민사학을 따르는 교학사 교과서가 단 한군데도 채택되지 않자, 이를 국정화를 통해 반영하려는 시도로 보고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덕일 소장은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동북아연구를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이 그 중심에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들 학자들이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왜곡에 동조하고 있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일본이나 중국은 자신들의 국가 이익을 위해 왜곡하고 있지만 한국의 이들 학자들은 역사를 팔아먹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일본은 패전 후 국내 식민사학계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임나일본부가 전남 전역과 충청남북도 및 경상남북도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한 일본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패전 후 서울대 국사학과를 들락거리면서 김원룡을 비롯한 국사학과 교수들을 지도해왔다는 사실은 김용섭의 회고록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에 잘 나와 있다.

또한 일본 신도의 한 일파인 덴리교가 주축이 된 조선학회를 통해 이병도 등을 비롯한 국내 사학자들을 초청해 관리해왔다. 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가 덴리교 도복을 입고 예배에 참석했다는 사실도 증언에 의해 알려졌다. 한국 역사학계는 해방 후에도 여전히 총독부 세상이었던 것이다. 일본 극우파가 국내 식민사학계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일본 문부성 장학금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 학자들 다수가 매국의 길을 걷는 것을 보면 일본은 이미 한국 역사학계의 정신세계를 장악한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국내 역사학계의 태두로 불리는 이병도는 매국노 이완용의 조카이다. 이처럼 국정화 문제의 본질은 해방 후 친일청산이 되지 않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정교과서 문제를 주도하며 총대를 메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적극적인 친일행적이 알려지면서 국정화 추진에 대한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다. 친일파들에겐 ‘친일’이 아킬레스건이며, 이를 감추기 위해 반공으로 위장하거나 친북 좌파로 몰면서 친일을 감추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정화 교과서에 정당한 평가를 싣겠다는 교육부의 의지에 불신이 이어지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과 최근 초등학교 사회 5∼6학년 실험용 국정교과서가 교학사 교과서와 비슷하다는 견해이다. ‘일제의 의병 대토벌’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주권을 빼앗기게 된 과정을 설명하기보다는 일본이 주권을 빼앗은 과정을 정당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는 것.

이와 함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를 묻는 역사 이야기에서는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드는 것에 대해 러시아의 양해를 구하기 위해 하얼빈에 온 것이다”로 표현하는 등 을사늑약을 성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쌀 수탈’을 ‘수출’로 표현하고 있다.

초등학교 국정교과서 실험본 ‘일제의 의병 대토벌’ 서술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 강점기 총독부 사관 반영
동북아역사재단 일본의 한반도 남부 지배 동조

그렇다면 매국의 역사학, 일본 식민사학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들은 주로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의 초기 역사를 부정하고, 고조선의 역사를 평양 인근으로 한정해 축소 왜곡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보면 고구려는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동조하고 있다. 또한 일본이 전남 지역과 경남북도 일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동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유리한 역사 사실이 발견되면 철저하게 침묵한다.

이덕일 소장은 해방 후 조선총독부 관점으로 한국사를 난도질한 매국의 역사학이 한국 사학계의 주류였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알려진 비밀이었다고 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일본의 극우파 역사학자이자 와세다대 교수인 미즈노 유에게 1985년 “고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현구는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가야를 임나로 둔갑시켰다. 고대 야마토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하는 “한반도 남부 경영설”를 제기했다. 게다가 식민사학의 원조 쓰다 소키치도 김해 일대의 소국으로 그려 놓았던 임나를 김현구는 전남 전역과 전북, 경남북도 일부 및 충청 남북도 일부까지 차지했던 상당한 제국이라고 묘사해놓았다. 그는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과 동북아역사재단 이사로 승승장구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여전히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논문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이 소장은 임나=가야는 사료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금관가야는 법흥왕 19년(532년), 대가야는 진흥왕 23년(562년)에 신라에 멸망해 삼국사기에 더 이상 나오지 않는데 가야와 임나가 같은 나라라면 562년 이후에도 일본서기에 더 이상 임나가 나와서는 안되는데, 일본서기 추고8년(600년)조는, “추고천황 8년 봄 2월, 신라와 임나가 서로 공격했다. 천황은 임나를 도우려 했다.”라고 임나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금관가야가 망한지 68년 후, 대가야가 망한 지 38년 후인 서기 600년에도 임나가 여전히 살아서 신라와 싸우고 있고, 일본서기에 임나는 계속 등장한다. 이것은 일본서기가 조작된 것이거나 일본 열도 안에서 벌어진 것을 기술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

김현구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책 193쪽에서 야마토에서 온 호즈미노오미 지방장관이 나주 영산강 일대를 다스렸다고 했다. 이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 이마니시 류가 ‘백제사강화’에서 펼친 주장의 아류이자 일제 패망 후 일본으로 쫓겨간 조선사편수회의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패전 후 실의에 잠긴 일본인들에게 한국을 다시 점령할 수 있으니 힘을 내라고 쓴 ‘임나흥망사’에 펼친 논리와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이덕일 소장의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책 표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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