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찬 기자수첩


마라도에는 대한민국 최남단임을 알리는 육당 최남선 비석글이 있다. 바다를 잊은 민족은 웅대한 기상도 잃는다는 내용이다. 그런 그에게도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는 암살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일본은 패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에서 그는 친일로 돌아선다.

1919년 봄, 나라 안팎의 정세에 힘입어 국내 인사들 위주로 일대 시위운동이 준비되면서 최남선은 독립선언문을 작성한다. 그럼에도 육당 최남선은 일제들에게 농락당하면서 발을 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수렁 속에 빠져버렸다. 조선 유학생들을 학병으로 나가게 하려고 도쿄에 가서 강연을 하는가 하면, 서울에서도 이런저런 일에 끌려 다니며 일제의 침략정책에 협조했다. 그러면서도 창동에 은거하고 있던 정인보, 홍명희 등을 찾아가 그들이 외면하는데도 얼굴을 계속 들이밀었다. 마침내 시대의 운이 바뀌어 일제는 패망했다.

회한에 찬 최남선은 우이동의 집에서 반민특위에 의해 친일부역배로 잡혀 이광수, 최인과 함께 오랏줄에 묶여 서대문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지난해 12월 28일 강석우 예비후보 기자회견장에서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에 선정된 이유이자 헐리게 될 윤이상 작곡가 생가터 대안을 묻자, 그는 역사에서 오점을 남긴 사례가 여러 있었고 남북통일 후를 고려한 생가터 보존도 생각해야한다며 지금 당장 판단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여러 기자회견과 통영시의 행정이 답할 수 없었던 것과 달리 기자회견장에 나쁘지 않은 대안을 제시했다.

묻지 않으니 답할수 없었다. 한달 내에 후보자 토론회가 열릴 수 있다니 도남동 신아SB조선소 부지 활용 등 다양한 목소리와 대안 제시가 전해졌으면 한다. 정치인들만 주고받는 토호세력과의 결탁이 아니라 100년 이상 살아갈 후대들을 위한 장기로드맵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IMF이후 자본에 휩쓸리는 통영의 정체성이 여러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남북 통일후에도 윤이상 생가터 지키기를 잘 했구나하는 자긍심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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