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산을 털어 건립한 한빛문학관.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不狂不及)”

차영한 시인.

일흔다섯이 넘어 네 번째 시집 ‘캐주얼빗방울’을 비롯 3권의 시집과 두 번째 비평집 1권을 출간하고, 여든에 시집 세 권을 동시 출간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멋쟁이 시인이 있다. 등단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고 왕성해져, 청마문학상과 경상남도문화상을 수상하고 이 달엔 송천 박명용통영예술인상 시상식을 앞두고 있다.

이쯤되면 웬만한 통영 사람은 “아, 차영한!”하며 알아보겠다.

차영한 시인은 시청에서 40년간 공직 생활을 하고 경상대에서 8년간 문학 강의를 했다. 통영예총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문협지부장과 예총회장을 두루 거치며 통영의 문화예술을 위해 평생을 바쳐왔다. 그리고 2014년 11월에 ‘통영한빛문학관’을 건립, 단순한 기념관이 아닌, 새로운 문학창작공간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차 시인은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不狂不及)” 는 말을 생각한다. 자신은 분명 미쳤던 거라고, 그래서 여기에 다다른 것이라고.

일제의 학정 아래, 어긋난 생의 출발

차 시인은 일제가 군국주의의 칼을 휘두르던 1938년에 사량면의 아랫섬(하도 능양마을)에서 태어났다. 윗섬에 있는 면사무소에 가서 호적신고를 하기 어려웠던 시인의 아버지는 면서기에게 호적신고를 대신 부탁했다.

여섯 살이 되어서야 호적신고가 안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어 부랴부랴 신고를 했지만, 신고한 날을 기준으로 생일이 정해지고 말았다.

“그래도 제 나이에 학교에 가고 중학교도 갔지. 그때는 취학통지서도 제대로 없었고, 선생님들이 내 자연연령 그대로 인정해 줬으니까.”

문제가 생긴 건 고등학교 입학 때였다. 진주에 있는 ‘사범고’에 진학하고 싶었던 차 시인은 1차 필기시험에 통과하여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면접관이 서류를 확인하더니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다.

“열다섯 살입니다.” 차 시인이 대답하자, 면접관이 말했다.
“서류엔 아홉 살인데?”
그 자리에서는 웃고 나왔지만, 면접 결과는 낙방이었다.

“실력이 없어 떨어진 거야.” 하며 수긍하려 했지만 진주 남강물이 왜 그리 섧게 보이던지, 차 시인은 난간을 잡고 많이 울었단다.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되고 보니, 그것도 우스운 일이다. “큰놈이 50대 중반이니 그럼 내가 십대 말에 낳은 셈이로군.” 차 시인은 중얼중얼하면서 커피를 마실 때 혼자서 웃는다.

예술계를 위해 한창 뛰어다녔던 젊은날.

가난한 시인의 문화 운동

차 시인은 1978-1979년 2년에 걸쳐 시전문지 월간 시문학에서 자유시를 추천받고 한국일보와 월간조선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이 됐다. 1966년부터 통영시청에서 일해 왔으니, 십여 년 공무원 생활을 한 뒤다.

1979년부터는 한국예총통영지부의 사무국장을 맡게 됐다. 보수는커녕 오히려 사재를 털어 일을 해야 했지만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시청에서 퇴근한 뒤 밤을 새가며 백일장을 준비하고 시화전이며 문학의 밤을 준비했다.

“어느 날 쌀집주인이 시청엘 찾아왔어. 3개월 동안 쌀값이 밀렸다고. 집에도 안 갖다주고 다 예총 행사에 쓴 거야.”

당시 예총에는 사진협회와 연예협회뿐이었다. 차 시인이 사무국장을 맡으며 문인협회, 음악협회, 미술협회, 연극협회가 생겼다. 문인협회의 경우 2, 3, 7대 회장을 역임하며 ‘통영문학’지를 펴내기도 했다.

“협회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지원이 생길 때 다른 사람에게 물려줬지.”

차 시인은 “누가 맡더라도 예술단체장은 자기를 불태워야지 다른 목적을 두고 맡으면 실망한다.”고 말한다. 매사에 물심양면으로 희생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재를 털어 만든 한빛문학관, 끝나지 않은 시인의 길

한빛문학관.

차 시인의 이런 믿음은 한빛문학관 건립으로 꽃을 피웠다. 지방마다 있는 똑같은 기념문학관이 아니라 창작문학공간을 만들고 싶어 전 사재를 털어 건립한 것이기 때문이다.

봉평동 전혁림미술관과 마주하고 있는 한빛문학관은 합계면적 78평인 2층 건물이다. 1층은 연구도서 및 발표 문학서적 등 3천여 권을 비치한 서재와 무료북카페, 연구실, 자료실, 관리실, 셀프주방 등이 있어 북콘서트와 소그룹 모임을 할 수 있다. 2층은 빔프로젝트를 갖춘 세미나실, 회의실이 있다.

차 시인은 이곳에서 현재 시 짓기 기법 및 인문학 교실을 열고 있다. 지금까지 6기 수료를 마쳤고 3월에 제7기생을 모집하고 있다. 차 시인은 이 문학관이 문학에 대한 모임이나 행사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열린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 달에 차 시인은 박명용 통영예술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상을 통해 받은 창작지원금으로 7번째 시집인 ‘새소리 받아 일기도 쓰고’와 8번째 시집 ‘산은 생각 끝에 새를 날리고’, 9번째 시집 ‘꽃은 지기 위해 아름답다’를 출간한다. 6번째 시집을 낸 지 6개월 만인데, 모두 미발표작으로 세 권을 낸다니 그 저력과 힘이 놀랍기만 하다.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가는데, 노시인은 오늘도 새들이 재잘대는 소리를 받아 시를 쓴다. 

차시인은 올해 세 권의 시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공부를 멈추지 않는 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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