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영양 채우며 마음 영양도 높이는 자생원 엄마

“잘 먹었습니다.”

어눌하지만 진심을 담아 자생원 식구들이 인사를 한다. 22년째 자생원 식구들의 밥을 책임지고 있는 유성애 영양사(49)는 맛있게 먹었다는 한 마디가 참 고맙다. 식단표 앞에 서서 “오늘은 뭐가 나오나” 관심을 보일 때, “맛있다”고 좋아할 때 영양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22년째 자생원 급식을 맡고 있는 유성애 씨

통영시 정량동에 있는 자생원은 무연고자 중증복합장애인 시설이다. 대개 무연고자 시설에서는 성인이 되면 자립하는 게 원칙이지만, 뇌병변장애인은 자립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니 자생원은 그냥 그들에게 집이다. 같이 밥먹고 같이 생활하고 같이 잠자는 생활 터전이다.

현재 자생원에는 63명의 장애우가 살고 있다. 함께하는 직원과 교사들을 합치면 아침, 저녁에는 80인분, 점심에는 110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점심에는 출퇴근하는 직원과 부설기관인 직업훈련소에서 일하는 훈련생들도 같이 식사를 하기 때문이다.

유성애 영양사는 이 식구들 전체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이들을 위한 급식실

자립한 뒤에도 생각나는 집밥

10년째 자생원 살림을 맡고 있는 강은옥 부장님은 “자립해서 밖에 나간 식구들이 놀러오면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밥이 제일 그리웠어요’입니다”라며 자생원 밥을 자랑한다. 자생원 식구들에겐 성애 씨의 밥이 그리운 집밥이다.

식단과 생일 특별식이 적힌 메모판

중증장애인은 평생 식구로 살아야 하지만, 직업훈련을 받고 취업을 한 사람들은 독립을 한다. 새로운 일터로 자립해 나간 식구들에게 자생원은 고향이고 친정이다. 그래서 쉬는 날이 되면 고향 오듯이, 친정 오듯이 찾아와 밥을 찾는다. 집 나가 혼자 사는 자녀들이 모처럼 집에 올 때 “엄마, 밥 줘~” 하듯이.

성애 씨는 “조리사님들이 베테랑이라 맛있게 조리해 주세요.”라며 공을 세 명의 조리사들에게 돌린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5년씩 같이 일해 온 팀이라, 손발이 척척 맞는다.

사실 영양사는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가도록 식단을 짜고 다양한 조리법을 연구하며 주방을 책임지는 직업이다. 직접 조리를 하는 건 조리사이지만,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야 할 때나 간식을 만들 때는 성애 씨도 같이 조리를 한다.

식구들의 그리운 집밥 맛을 만들어내는 급식실 조리사들과 함께.

생명을 보살피는 일에 소홀하지 마라

유성애 영양사가 처음 자생원 식구가 된 건 1997년이다. 그 무렵 언제였는지, 설립자인 고(故)한삼주 이사님이 “의사는 아니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생명을 보살피는 일이다”라며 “생명을 보살피는 일에 소홀하지 마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제 마음에 와 닿았어요. 식단을 짤 때마다 책임감이 생겼지요.”

자생원에 오기 전 참치를 가공하는 기업체에서 1년 반 동안 영양사를 했을 때는 직원들의 기호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었다. 점심 한 끼였고, 건강한 성인들에게 필요한 열량과 기호를 맞추면 되었다.

식당 배식을 준비중이다.

그러나 1급 뇌병변장애인이 많은 자생원의 식단은 식구들의 건강상태와 영양과 소화능력을 모두 고려해야 했다. 치아 기능이 약한 분을 위해 재료를 더 다지고, 소화기능이 약한 분을 위해 흡수율 높은 조리법을 찾아야 한다.

“세 끼를 모두 여기서만 먹으니, 얼굴이 까칠하거나 체중이 늘지 않으면 공연히 내 잘못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지요.”

내내 같이 생활하는 가정이다보니 영양상태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느끼는 것이다. 자녀들 건강을 살피는 엄마 마음이 그렇듯이.

여자 생활관에서 주문한 특별식으로 수제비를 만들고 있다.
치자, 부추, 비트로 색깔은 낸 수제비

마음 빈자리를 채우는 자생원의 특별한 식사

“그래도 식구들을 대할 때는 짠한 마음이 있어요. 일반 가정과 달리 주는 것만을 먹어야 하니까요.”

이런 고민 끝에 성애 씨가 시작한 일이 ‘식단 회의’다. 거창하게 말해 회의지만, 사소하게는 집에서 아이들의 “엄마, 뭐 먹고 싶어.” 하듯이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자생원은 생활관이 4개다. 남자와 여자를 나누고, 중증장애와 경증장애를 나눈 것이다. 그 생활관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정해 성애 씨에게 알려주면 1주일에 한 번 그 메뉴가 식단에 오른다.

특별식이 있는 날에는 “내가 주문한 거야.” 하며 더 즐겁게 식사를 한다. 7년째 해오고 있는, 골라먹는 기쁨을 주기 위한 작은 배려다.

식당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은 자기 생활관에서 가정별로 식사를 한다.

올해부터는 한 걸음 더 나가, 가정 별로 특별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가정이란 3~6명으로 구성된 한 집을 말한다. 4개의 생활관마다 5가정씩이 있으니, 자생원에는 전체 20집이 있는 셈이다.

“가정에서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면 재료를 준비해 주거나 만들어 줘요. 식구들끼리 먹는 오붓한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지요.”

가족이 없는 이들에게 어떻게든 가정의 기쁨을 누리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식사 시간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우리집은 오늘 스파게티 해 먹을 거야.” 옆집에 자랑도 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몸의 영양뿐 아니라 마음의 영양까지 돌볼 수 있어, 유성애 영양사는 오늘도 감사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일대일로 급식을 도와야 하는 거주인도 많다 .
간호(왼쪽), 급식, 물리치료는 지원팀이다. 유성애 지원팀장은 매주1회 건강회의를 주재한다.
급식실 배식이 끝난 다음에는 각 생활관을 돌며 식구들의 식사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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