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조시 <지금 나, 간다>
유귀자 시인 

그래, 백년
나 김복득 이생에 와
꼭 백년을 살고 오늘에사 간다
장맛비 몰고 태풍 더불어 간다

나의 백년은
한반도 조선의 백년

조국이 힘이 없어
강토가 짓밟히고 금수강산 산천경계 다 내주고도 모자라서
열여섯 일고여덟 스무살
분꽃같고 박꽃같고 아, 산목련 같은 처녀였던 우리가 내가
전쟁에 미쳐 날뛰는 짐승들의 성노리개로 끌려가서는
지옥보다 더한 치욕의 나날을
죽지 못하여 살아야 했으니 견뎌야 했으니...

어찌 다 말로 하리
세상의 피륙을 다 쌓고 펼쳐놓은들
어찌 우리 그 치떨리던 기억을
아비규환 신음과 통곡을 써내려가리

그래, 우리는 나는 곡비였다
나라 잃은 억울을 설움을 노여움을
백옥같은 살갗 다 짓물러지도록
섬섬옥수 열손톱 다 갈퀴지도록
온몸으로 온몸으로 대신 울어내야 했던

대련, 필리핀
칠년이 칠십년이었던 그 울음을
백살의 나이에도 못 다 울어서
나는 살아야 했다

이 세상은 나비조차도
먹고 살기 위해 바쁘다는데

진실을 진실로
정의를 정의로 말하기 위해 밝히기 위해
나는 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
오사카, 동경, 금강산, 서울...
수요시위, 인권캠프, 증인집회, 라디오, 텔레비
오만 인터뷰 마다않고
발 부르트도록 목 쉬도록 바빠야 했다

먼저 간 기선이, 기아, 정애...
내 동무들 아우들 대신해서
목숨값 나이값 다 해야했다

그것이 나의 백년이었다
참 세월도 명도 모질고 독했다

인자 나 갈란다
뒤에 남은 거는 너거 할 일 너거 숙제 아이것나

도자야, 장천아, 철아, 미경아!
느그들 나 보살피고 따라댕긴다꼬 욕봤다
에구 토영 여고생들
눈에 넣어도 아프잖을 내 꽃손녀들아!
너거가 있어서 나 가는 길
흩뿌리는 장맛비도 바람도 꽃비에 꽃바람일세

울지말거라
울지말고 너거들
냇가에 나와 앉은 아이마냥
오색 종이배 접어설랑은 그 배 뒷전을 살몃 밀듯이
저 푸른 창공을 차고 오르는 그네를 밀듯이
가볍게 훠얼훨 나를 밀어다오 배웅해다오

자 간다!
어라차차차 차 차 차
능소화 봉선화 흐드러진 담장 너머로 너머로 얼씨구나 나 간다

차 차 차 차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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