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나비의 한 번 날개짓이 태평양을 건너 뉴욕에서는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나비효과 이론이다. 하지만 이 말도 되지 않는 이론이 지금은 사소하고 아무 의미 없을 것 같은 사건이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비유로 중요하게 인용된다.

김숙중 기자
김숙중 기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일으킨 것이 바로 나비효과다. 애당초 중국 우한에서 처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이는 단지 공중보건의 문제로만 여겨졌다. 대부분의 나라와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위협이라고 머리로만생각했지 뼈저리게고민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나라만이 극히 초기단계에서부터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엄중하게 대처했다.

서방언론이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방식과 성패(成敗)를 구분할 때 한국과 이탈리아를 예로 들고 있다. 두 나라가 비슷한 시기에 확진자가 발생했고, 첫 대응은 비슷했지만, 국가차원의 적극적 대처를 고수한 한국은 사망자가 적고 발생이 감소추세가 된 반면, 이탈리아는 지난 20일 확진자 4만명과 사망자 4000명을 넘겼다.

이런 극명한 대조는 국민들이 얼마나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이 높으냐에 따른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세계최빈국으로 내전을 겪었고, 독재정권에 항거했으며, 생명을 던져가며 정부와 집권층에 국민의 목소리를 듣게끔 시민의식을 키워왔기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피를 요구한다는 격언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각을 잊을 때면 소수의 기득권층은 다수의 시민들을 희생양 삼으려 하기 때문이다. 한 네티즌은 이를 두고 한국인은 국난극복이 취미다라고 촌철살인할 정도다.

미국이 이탈리아가 아닌 한국방식을 따르기로 선언한 이후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일 하루만에 5000명이 늘어나며 18000명도 넘었다. 슬픈 일이지만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확진자를 찾아내서 격리하고 동선에 있었거나 접촉했음직한 시민들을 찾아내서 테스트하는 것을 반복하면 희생을 치르겠지만 통제가능한 시기가 오게 마련이다.

문제는 일본이다. 민주국가가 아닌 군주국가라서 시민들은 주권의식이 희박하고, 집권세력은 극우가 장악해서 언론통제를 하니 편향된 정보만 얻어서 혐한·혐중(嫌韓嫌中)정서만 강해진다. 일본만 유독 확진자와 사망자가 적을 수는 없다. 일단 감염자가 있으면 얼마나 급속하게 전염되는지를 중동, 유럽, 미국이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정부가 혹세무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주변의 누가 감염자인지, 그 감염자가 어디어디를 다녔는지, 심지어는 사인(死因)이 코로나19때문인지도 모른 채 일상생활을 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전 세계가 통제 가능해 질 때쯤 일본은 새로운 숙주가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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