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교육(敎育)을.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그만큼 쉽게 변하기 힘들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그럴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조차 수차례나 언급할 정도로 한국 사람들의 자녀에 대한 교육열은 극성스러우니까.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우리의 교육체제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천편일률적이고, 일방향식이며, 개성을 억누르는 주입식인데다, 단 한 번의 대학입시로 개인의 일생을 운명 짓기 때문에 고등학교 3학년에 가까워질수록 학생과 학부모가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난 이런 방식에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종종 색다른 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변화의 바람, 자유학기제·자유학년제

가장 최근의 정책으로 자유학기제가 있다. 2013년 처음 시범적으로 실시된 자유학기제는 말 그대로 한 학기동안 자유롭게 수업을 받는다는 제도다. 중학교 과정 중 한 학기동안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자유롭게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호응도가 좋아 2016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실시하게 됐다. 이어서 2018년부터는 자유학기제를 아예 두 학기로 늘린 ‘자유학년제’를 실시했는데, 처음에는 전국 중학교의 절반 가까이가 실시하다가 올해는 거의 모든 중학교가 자유학년제를 실시하고 있다.

물론 중학교 2학년이나 3학년이 아닌 1학년 때에 자유학기제, 자유학년제를 실시한 점은 ‘고등학교에 진급하면 대입수능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암묵의 사회적 약속 때문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중학교 1학년 동안 지필시험, 중간 및 기말고사에 구애받지 않도록 제도를 도입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자유학년제 동안 청소년 학생들은 스스로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는 동아리·예술·체육 등 다양한 활동을 체험할 수 있고, 독서토론·역할극·진로체험 및 프로젝트 등 참여형 수업을 통해 자신의 재능발굴이나 진로를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많은 일선 교사들도 “학생들의 자기주장이 대단히 논리적이게 됐고, 토론하는 태도도 우수해졌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자유학년제는 교사들에게도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한다. 성취도·지필 평가 부담을 덜게 됐고, 교육과정 구성에 자율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사교육시장과 서열화 대학은 적(敵)

그러나 여전히 출세를 보장해 주는 명문대학으로 진학하려는 학생 및 극성스런 학부모들, 이를 악용하는 사교육시장 그리고 이 모두에 부응하는 정치권은 공정하고 평등한 공교육 실현의 걸림돌들이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서열화 됐고, 균형감을 잃었다. 생태계에 비유하지면 피식자를 멸종으로 몰고 갈 만큼 압도적인 포식자다. 3대 명문대를 일컫는 소위 ‘스카이(SKY)’란 용어는 웬만한 외국인들까지 알고 있을 정도다. 하필 ‘하늘’이라는 뜻으로 더욱 절묘한 비유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은 최소한 40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 10여 년 전 사교육종사자가 이미 30만 명을 넘었다는 통계가 있었다. 시장지배적인 학원들이 인터넷사교육시장까지 진출하면서 사교육의 공룡화는 가속화되고 있어, 만일 사교육 시장을 침해하는 법규나 정책을 추진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선거에서 지지를 얻지 못할 각오를 해야 할 정도가 됐다. 이런 현실에 학부모들의 학교교사들에 대한 비하, 편견이 도움을 주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잊은 지 오래됐고, 학원의 입시강사와 비교열위에 놓이기 일쑤다.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얻도록 해 주는 능력’만이 가르치는 사람을 평가하는 유일한 항목인 점은 대단히 우려스런 일이다. 가르치는 사람을 스승이라고 높여 칭한 것은 다만 지식을 전달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학교는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의 장이다. 말 그대로 전인교육(全人敎育)을 하는 곳이다.

 

위기, 교육정책 변화의 대기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 다음으로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았다. 하루에 수 백 명씩 확진자가 속출할 땐 ‘입을 다물 수 없는 지경’이었다. 1만 명을 넘었을 땐 ‘하필 우리나라에~’ 했었다. 확진자수 순위표에서 두 달 가까이 2위를 하더니 지금은(20.8.8 현재) 어느새 74위까지 떨어졌다. 미국은 500만 명을 넘었고, 브라질과 인도는 200만 명을 넘었으며, 10만 명을 넘은 나라만 25개국이다.

하늘 길은 거의 끊어졌다. 외국여행은 꿈도 못 꿀 일이고, 일상마저 사라졌다. 학교 역시 일상을 빼앗겼다. 1학기 대면등교는 1개월 보름이나 늦어졌고, 아직 여름방학조차 시작하지 않은 학교도 많다. 올가을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고3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하지만 유치원에 진학하며 가족을 떠나 사회성을 배울 유아들, 공교육의 첫걸음에 들어서는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들, 중학교 진학생들, 고등학생 등 모두가 피해자일 수밖에.

현재를 걱정하면서도 전 세계는 팬데믹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너무도 쉽게 빼앗길 수 있다는 자각 위에서. 이번 팬데믹을 무사히 넘기기를 바라면서도, 과연 그것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인가 우려는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번 팬데믹 위기는 우리나라 교육정책에 있어서 기회일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일상에서는 감히 시도하지도 못할 정책을 과감하게 실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군국주의적인 색채가 여전히 남아있다. 팬데믹 이전에도 자유학년제를 확대 실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고3 한 번의 수능으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방식이 아니라, 청소년기에 보여주는 학생의 재능과 개성을 면밀히 살펴서, 사회에 진출했을 때 자신의 장점을 살리도록 도와주는 교육제도를 확립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꾼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 굳이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아도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있고, 따라서 사교육에 투입할 가정의 재원을 저축하거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2020년을 역사적 대전환의 한 해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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