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행정(展示行政)? 내세울만한 성과는 없었어도 무언가를 하긴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그렇게 해서라도 선거에서의 지지표를 얻기를 바라는 보여주기식 행정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권위주의 정부시절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졌던 행태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요즘에야 많이 줄어들었지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인데, 사회지도층과 민초들 사이에 믿음이 굳건하지 않았으니 기이하게 변형되거나 잘못 운용된 제도들도 많았고, 일부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중 하나가 공무국외출장이 아닐까 한다. 한때는 아무나 국외여행을 할 수 없던 때도 있었고, 해외여행자유화 이후 수 백 만 명이 다녀오는 여건에도 해외여행을 꿈으로만 여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까? 더구나 공무해외출장은 국민의 혈세를 사용하는 것이기에 시민들은 더더욱 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

가장 최근으로는 2017년 여름, 자신의 지역구에 폭우로 인한 홍수피해가 발생했음에도 해외연수 일정을 강행했던 충북도의원들이 국민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일이 있다. 물론 당사자였던 K의원의 몰지각한 ‘레밍신드롬 발언’으로 비난의 수위가 더 거세지기도 했다.

이런 심리의 근본을 파고들면 공무원들의 무임승차, 공짜심리, 특권의식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고 뽑아줬더니, 혈세를 이용해서 유명 관광지만 찾아다니며 외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다. 그렇게 외국을 다녀왔으면 제대로 된 결과를 가져와서 보고서도 충실히 작성하고, 정책에도 반영함은 물론, 국외출장의 결과물이 지속적으로 공유되도록 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데 대한 반발심이다.

통영시의회 김미옥 의원도 “공무국외 출장계획을 외국실정을 잘 모르는 공무원들이 하지 않고, 관광회사에 일임을 하는 경우가 많아 외유 또는 관광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공무국외 출장 후 제출하는 보고서 역시 대부분 관광회사에서 기본 제공하는 자료에 의존해서 작성해 제출만 하면 출장 업무가 끝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고 말했다. 김미옥 의원은 “앞으로 공무국외 출장은 계획수립 단계부터 철저하게 점검 수립하고, 관광사는 행정이 수립한 계획대로 일정을 보완해주는 형태로 개선해야” 하고 “분기별 또는 반기별로 출장보고서를 발표하고, 우수사례는 정책에 반영 및 표창하는 제도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통영시의회에 따르면 시의원들의 국외여비는 다른 세 가지 항목과 함께 총액에서 제한돼 있다, 다른 세 가지 항목은 의정운영공통경비, 의회운영업무추진비, 의원역량개발비를 말한다. 따라서 시의원국외여비 액수를 높일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다른 세 항목의 예산은 줄여야만 한다. 또 국외여비 예산 자체도 크게 높일 수 없게 돼 있다. 의정운영공통경비와 의원역량개발비는 최근 3년간 당초예산액의 평균액 대비 29.7%를 증액할 수 있고, 의회운영업무추진비는 17.6%를 증액할 수 있지만, 국외여비는 단 5%만 올릴 수 있도록 2021년도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행정안전부)에 규정돼 있다. 각 항목별 증액한도를 합산하면 연간 70% 넘게 증액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총액한도는 4년마다 물가상승율을 감안해 조장할 수 있도록 돼 있어서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물가상승율에 따라 인상해야지 매번 한도만큼 올렸다가는 거센 비판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올해 통영시의회의 의정운영공통경비는 9600만 원, 업무추진비는 8070만 원, 역량개발비는 1885만 원, 국외여비는 3900만 원이다. 네 가지 항목 총액은 2억3455만원으로 경남도 8개 시(市) 중 7위에 해당하고, 국외여비만으로는 8위다. 통영시는 경남도내에서조차 시의원의 공무국외출장에 가장 인색한 점이 확인된다.

‘기이하게 변형되거나 잘못 운용된 제도’ 중 아직 남아있는 대표적인 것이 ‘시의원공무국외출장’이 아닐까 싶다. 생선가게를 지키기 위해 강아지를 키우는데, 목줄을 걸어놓은 꼴이라고나 할까? 1000원짜리 하나 주면서, 마음에 드는 거 다 사고 잔돈 챙겨 오라는 심보같기도 하다.

현재의 공무국외출장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들의 출발점은 모두 예산이다. 밖에서는 상·하반기로 나눠 상임위별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한 두 명이 국외출장을 가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단체유람식 출장은 여행경비를 절감하려고 애쓴 결과물일 뿐이라고 한다. 빡빡한 일정과 빠듯한 예산도 겉핥기식 국외출장을 부추기며, 이런 여건에서 수준급 출장보고서를 작성하라는 것 역시 무리한 요구처럼 보인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반대할지 모르고, 정부의 예산편성 운영기준 때문에 실현불가능일지 모르지만 본지는 이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단체유람식 국외출장 대신 2~3명 시의원이 프로젝트식 국외출장을 가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우리 지역의 현안과 관련해 분명히 참고해야 하는 선진지 출장에 대해 예산과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도록 하고, 대신 결과물에 대해 반드시 책임지게 해야 한다. 지금처럼 주요대화 일부내용을 제한된 지면에 기재하는 방식은 믈론 음성이 포함된 영상자료까지 촬영해서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시의원들이 자신의 식견을 넓히고, 자질을 높이는 데 드는 비용을 시민들이 아깝다고 생각해야 할까? 멀리 바라보면 이는 결국 시민들을 위한 좋은 정책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넉넉한 국외출장 자료가 있는 곳을 재방문하기는 어려워 질 것이고, 빡쎈(?) 결과보고서를 작성할 각오는 한 다음에 국외출장을 갈 결심을 할 것이다. 지금의 국외출장제도는 현실안주형 또는 하향평준화형 방식일 뿐이다. 경비는 쥐꼬리만큼 주면서 외유다 뭐다 손가락질 쉽게 하고, 보고서가 부실하네 어쩌네 비난하기 일쑤인 제도는 전혀 건설적이지 않다. 우리 사회도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만큼 성숙해 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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