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경남도의원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했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에서 찬란한 문화와 격조 높은 예술을 꽃 피워냈던 곳! 우리 통영의 또 다른 이름이다.

(1) 2021아침, 통영의 미래를 생각하다

영남, 호남, 호서의 수군을 관할하던 삼도수군통제영에서 통영이란 말이 유래되었듯이, 통영의 역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통제영을 자리 잡음으로써 시작되었다. 이후 통영은 군사도시로서 또한 남해안 물산이 모이는 교역지로서 발전을 거듭하면서 통영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왔다.

이를테면 서울의 지체 높으신 관리들의 미적 수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12공방으로 대표되는 조선 최고의 공예품이 생산되었고, 통영갓, 통영소반, 통영자개장으로 대표되는 “메이드 인 통영”을 앞세워 조선팔도에 통영을 각인시켰다. 생전에 박경리 선생도 상대에게 통영이 고향이라고 하니 통영 자개장을 구해달라고 했다는 일화를 말씀하실 정도였으니, 통영은 그 자체로 이미 최고급 명품 브랜드였다.

또한 멸치를 비롯한 풍부한 수산 자원은 통영을 먹여 살리는 젖줄로 근대적 자본이 축적되기에 충분하였고, 상공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전체의 절반을 넘어 개항지가 아니었음에도 일찍이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 결과 통영은 20세기 초부터 부산, 마산, 진주와 더불어 경남 4대 도시로서 그 위상이 당당했으며 부자 도시로도 명성이 높았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때 조사에 의하면 통영읍민의 40% 정도가 부재지주로 전국에 산재한 농경지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은 이를 잘 말해준다.

이러한 넉넉한 경제력에 수준 높은 미적 의식이 더해지다 보니, 하늘의 은하수와 같이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시인 유치환·김춘수·김상옥, 소설가 박경리·김용익, 화가 전혁림, 작곡가 윤이상 등 거장들의 자취는 아직도 선연하다. 정량동 뒷골목에서 파이프를 물고 이영도 시인에게 편지를 부치러 통영우체국으로 향하는 청마 선생이나, 남망산 어느 기슭에서 화구를 펼쳐 놓고 스케치 구상에 몰두 중인 전혁림 화백의 모습은, 통영시민이면 누구나 기억하는 아련하고 정다운 장면일 것이다.

이렇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최고만 모여들던 통영이 어느 때부터 사람도 물건도 서서히 떠나가는 도시가 되었다. 혹자는 통영을 떠받치던 수산업이 예전만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조선 경기의 불황 여파 때문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통영의 가치를 너무나 당연시하면서 통영만의 색깔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우리 자신들의 노력이 부족한 까닭이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지역개발과 산업혁신을 통해 살고 싶은 통영을 만들고, 통영만의 색깔로 문화예술을 진흥하고 관광도시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할 것을 자치역량으로 이루어낼 것을 제안한다.

이른바 통영혁신 프로젝트(Tong-young Innovation by Local Autonomy project )인 TILA (T=Tour(관광), I=Industry(산업), L=Learning(시민교육), A=Arts(예술)을 의미하며, 튀어라를 통영말로 티라로 말하는 것과도 상통함)를 통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며 통영의 밝은 미래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살고 싶은 통영을 만들자 (지역개발 및 산업 편)

조선후기 베스트셀러의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라는 책이 있다. 사는 곳을 택한다는 책의 제목과 같이 전국의 여러 곳을 여행하고 살기 좋은 곳을 설명한 책이다. 이 책에서 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생리(生利)라는 경제적 조건인데, 그것은 교통의 편리함과 산업적 생산력에서 나오는 경제적 이득을 중시했다.

즉, 아무리 지리(地理)나 산수(山水), 인심(人心)이 좋은 곳이라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살기 어렵다는 뜻과 상통하며, 이러한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통영을 보자. 일 년 내내 온난한 기후와 한려수도의 수려한 경관 그리고 철마다 가득히 식탁을 채우는 싱싱한 수산물들은 가히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임에 틀림없다. 남해안 일대의 경승지가 많지만, 경제적 이익의 교역이 활발한 통영이야말로 생리(生利)가 제일인 곳이어서 남해안 제일의 도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산업화 이전의 사회에서, 농촌에서는 토지 생산력이, 그리고 어촌에서는 어획고가 바로 그 지역의 경제력이었다. 따라서 어느 땅에서 무엇이 더 많이 생산되고 어느 바다에서 고기가 더 많이 잡히는가가 곧 경제력의 척도였으므로 자연 발생의 조건에 따라 취락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통영은 천혜의 어업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잡는 어업의 한계를 간파하고 굴을 비롯한 각종 수산물을 양식하여 어업에서의 일대 혁신을 선도하여 자연적 한계를 일찍부터 극복했었다.

그 밖에도 자연 발생적으로 발달한 조선업을 지역의 특성에 맞게 특화한 것이라든지, 과거 관청에만 납품하던 각종 공예품들을 민간의 수요에 맞게 기업화한 나전칠기 공장의 사례 등은 모두 통영 사람들이 가진 혁신적인 생각으로 현실을 타개한 위대한 사례라고 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고기가 안 잡힌다고, 조선업이 불황이라고, 관광객이 들지 않는다고 그저 손을 놓고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면 예전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극심한 상황과 비교해본다면 지금의 상황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을 탓하지 말고 어떠한 고기를 손님들이 더 원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고기는 어떻게 더 잘 기를 수 있는지, 그 고기의 부가가치를 어떻게 더 높일 것인지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거제에 있는 대규모 조선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인지, 아니면 거제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조선업은 무엇인지 등 끊임없이 고민하고 혁신해야 한다. 관광업도 같다. 어떻게 하면 손님들을 더욱 친절하게 유치할 수 있을까, 손님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들을 통영의 여건과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가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즉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느낄 수 없는 차별화된 통영만의 관광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남부내륙철도가 완공되면 서울에서 통영까지 2시간 반으로 소요 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지금 추진 중인 한산대첩교가 완공된다면 통영과 인근 도서 사이의 교통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철도와 도로 교통의 인프라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이러한 이점을 활용해 우리 통영 경제의 3대 축인 수산업과 조선업을 비롯한 제조업 그리고 관광업 등에 경제적 온기가 퍼져 나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고민에서부터 과거 통영의 화려한 영광이 재현될 것이며 살고 싶어하는 통영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경제력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인다는 당연한 명제가 통영에서도 다시 한 번 증명되길 간절히 바란다. <2부에서 계속>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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