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명성은 모든 전통시장 상인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다.
통영의 명성은 모든 전통시장 상인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는 속담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신경질적으로 인상을 찡그리는 민족이라고 평가받는단다. 하긴 그렇게나 굴곡(屈曲)지고 신난(辛難)한 근현대사를 겪었으니 어찌 쉽게 밝은 표정을 짓겠냐마는 원래 우리는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민족이요 해학(諧謔) 넘치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웃음 가득한 얼굴 항상 지니기 뭐 어려우랴. 여기에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 했으니 말투야 무뚝뚝하더라도 그 안에 정감(情感)을 듬뿍 넣는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아니겠는가? 장사치라면, 더구나 전통시장 상인이라면 다정한 미소와 정감어린 말투는 필수이지 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실로 돌아오면 요샛말로 ‘현타’온다. 현타란 ‘현실자각타임’을 줄여 이르는 말로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을 의미한다. ‘갱상도’의 정과 풍성한 먹거리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통영의 전통시장을 찾은 관광객에게 이른바 현타가 오는 시간은 의외로 빠를지 모른다.

평판이란 마치 모래성 같아서 쌓을 땐 공을 들여야 하지만 무너지기는 한 순간이다. 미륵산케이블카 준공 초창기 통영열풍이 일었을 때도 일각에서 ‘통영 찾아오는 손님 귀한 줄 알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이를 들은 채 만 채 하다 관광객의 외면을 받으며 오랫동안 힘겨웠던 뼈저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이제 통영만의 정감을 얼굴 가득 담아야 한다. 당신이 상인이던 시민이던.

 

■억센 사투리, 미소로 이겨내자

관광객이 하늘에서 재래시장 안으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이상 이미 통영의 거리를 걷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들어온 나긋나긋한 수도권 말씨와 전혀 다른 억양을 접하게 된다. 심지어 평범한 대회가 심각한 말싸움으로 여겨지고, 마음을 담은 한 마디 말조차 시비 거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차에 통영의 전통시장을 찾았는데 신기한 기분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지레 겁부터 먹지 않을까? 요즘은 경상도 사투리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진 편이다. 예전 같으면 전혀 알지 못하던 뜻의 사투리 단어를 방송에서 접한 덕분에 제법 이해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억수로’라는 단어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사투리나 마찬가지고, ‘따시다’는 단어 역시 상당히 널리 퍼져있다. ‘뭐 하노?’나 ‘밥 뭇나?’ 정도는 국민사투리다. 덕분에 경상도 사투리는 제법 지역에 대한 친근감을 높이는 긍정적인 무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웃기거나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서울사람이 경상도 사투리를 흉내 내거나 또는 방송 등 영상으로 접할 때고, 실전에서는 긴장되기 마련이리라.

서울의 경우 손님이 오면 “어서 오세요, 손님.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하고 다정하게 물어 올 텐데, 이곳은 그렇지가 않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구매목록을 하나씩 지워야지’하는 당초의 결심은 나들이 초반부터 도전을 받는다. 손님이 관심을 보여도 상인은 거들떠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왜냐면 대부분의 손님은 가격을 물어본 뒤 발걸음을 돌리기 일쑤라는 것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자주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상대방이 왜 내 앞에 있는지를 종종 잊는다. 손님이라고 방문하는 모든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연하다. 여기저기 상품을 비교하고 선택하는 것은 구매자로써 자연스런 행동이다. 가격을 비교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고, 제품의 상태 또는 그냥 겉모양을 기준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또는 전부를 비교분석할 수도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생각지도 못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구매할 결심을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손님의 권리다. 물론 진상손님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을 건네기도 전에 진상인지 아닌지를 알 길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제안한다. 노점이던 가게이던 찾아오는 손님을 발견하거나 그 손님이 떠날 땐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자. 손님이 올 땐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게 있어요?”라고 말하고, 손님 떠날 땐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들려주세요.”라고 건네자. 가격을 물어보는 손님에게는 미소와 함께 응답을 해 주고, 그냥 떠나더라도 정겹게 작별인사 건네자.

사투리가 아니라면 좋겠지만 사투리라도 상관없다. 사투리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말투에 정감이 묻어 있느냐, 배려가 들어 있느냐가 중요하니까 말이다. 오히려 사투리인 것이 더 정감이 갈 때가 많다는 것, 통영으로 관광 왔으니 실전 사투리를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라는 점들을 고려하면 정감어린 사투리를 그냥 자연스레 건네면 될 뿐이다.

 

 

■  스스로 가이드인 것처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전통시장의 상권을 살리기 위해 중앙정부·지방정부 할 것 없이 얼마나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얼마나 다양한 정책을 펼치는가? 전통시장 현대화 관련사업이라면 항상 예산배정 우선순위 목록의 상위를 차지한다. 전통시장 관련된 사업은 과장해서 말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산지원을 한다고 할 정도다. 더구나 전국 지자체 중 재래상권 살리기 정책을 펼치지 않는 곳 하나도 없고, 명절이면 지자체장뿐 아니라 대통령까지 가장 우선적으로 방문해 민심을 듣는 곳이 바로 전통시장이다.

상인들을 위해 상인대학을 만들고,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익한 강의를 들려준다. 전통시장의 비교열세인 지위를 고려해서 매월 두 번의 일요일에는 대형마트는 영업을 못하도록 법률과 조례로 지원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이렇게나 지원이 다양하고 풍성한데도 뭔가 잘 안된다면 그것은 ‘상인들에게 문제 있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재래시장 상인들도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경우 손님들에게 강요를 하지 않는 상술을 채택하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고객쟁탈전이 오죽 심각했으면 ‘손님이 상인에게 물어보기 전에는 호객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되지 않는 규칙까지 나오겠는가?

전통시장 상인들도 비뚤어진 자만심은 버려야 한다.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예산으로 뒷받침하다보니 마치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전통시장 관련된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는 듯이 행동하는 경우가 자주 벌어지는데, 이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우월감에 도취된 자만심이 전통시장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함부로 응대하는 근원이 된다며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통영의 전통시장만을 찾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이 통영을 방문한 것은 통영의 모든 공유자산이 매력적인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름다운 자연경관, 빼어난 문화·예술적 자취, 자부심 넘치는 역사적 자산, 풍성하고 싱싱한 먹거리, 직접 느껴보고 싶은 관광시설에 모든 시민들의 노력이 융화된 그 결과물로써의 통영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방문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어리석은 언행으로 ‘그저 자신의 장사만 망쳤다’는 정도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비록 자신의 생계라 해도 공공의 자산 위에 서있는 것이라면 공적인 책임감을 당연히 가져야 한다.

다만 그 책임이 뭐 대단한 후속조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가게를 찾아온 손님에게 마음을 담아서 응대하는 것 정도일 뿐이다. 강박증에 사로잡힌 듯 인사에만 몰두하란 말도 아니다. 몸이 바쁜 와중에라도 방문을 환영한다는 인상을 주도록 하자는 말이며, 돌아서는 손님의 뒤통수가 간지럽게 느끼지 않을 정도로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고객과 대화할 땐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는 것도 필요하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길을 바라보는 행동에서 사람들은-대부분의 동물들은-안정감을 느낀다. 대화를 하는데 눈을 피하고 주변을 살피는 상대방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쉽다. 눈싸움이라도 하듯 말하는 내내 응시하란 말이 아님을 독자들께서는 잘 알 것이다. 자신의 할 일을 하면서도 대화는 응수를 하고, 종종 상대방을 쳐다보면서 미소를 띄는 정도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올 땐 “어서 오이소. 뭐 찾으시는 거 있어예?”라고 반기고, 갈 땐 “잘 가입시데이. 다음에 또 오이소~.”하고 보내면 된다. 거래 또는 흥정 중에라도 일상적 대화로 손님과 소통하고, 게다가 가볼만한 관광지, 지역민만 아는 좋은 맛집 추천까지 한다면 금상첨화다. 상인에게 가격 묻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뭐 잘 못된 일이 아니지 않은가? 괜히 피해의식 드러낼 필요 있을까?

한국인은 솔직한 민족성의 소유자라서, 손님이 가격을 물어보면 마치 원가공개 요구를 받은 것처럼 반응하곤 한다. 시쳇말로 손가락 빨면서 장사하는 것 아니지 않은가? 장사치에게 이윤 아니면 뭐가 중요한가? 미소와 함께 답변해 준 가격은 아마도 이곳이 산지(産地)라는 점, 싱싱하기로는 국내 둘째 안 갈 곳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이맛살 찌푸릴 바가지가 아닌 이상 납득해 줄 것이 분명하다.

통영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이미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시장에 갔더니 통영사람처럼 보이면 제 값을 받고, 관광객으로 보이면 여지없이 바가지를 씌우더라는 얘기. 선물로 보낼 꿀빵을 아침 일찍 사러갔더니 전날 만들었던 것을 내주더라는 얘기. 이젠 변해야 한다. 변해야 한다고 주기적으로 되새길 일이 아니라 이 변화를 우리의 언행(言行) 속에 새겨야 한다. 혼자만 장사 망치는 일이 아님을, 통영이라는 우리 모두가 오랫동안 쌓아올린 평판과 명성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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