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 주를 밀어내고 5일(수)과 8일(토)에 대한민국 두 거장 예술인의 추모제가 있었다. 박경리(1926~2008)선생과 정윤주(1918~1997)선생이다.

해마다 이맘쯤이면 연한 살결같이 보드라운 신록을 가슴에 안고 전국 각지의 후학들을 양지바른 산중에서 맞이한다. 그들은 가족으로, 지역 단체의 장으로, 생전의 특별한 인연으로 제각기 사연을 초대받아 예술 정신을 추모하러 오는 것이다.

그러나 풍성한 글 잔치로 어린이날을 맞이하던 박경리 선생의 앞마당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신록의 푸르름만큼이나 싱그럽던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재잘거림이 꽃으로 피어나던 뜰앞에는 이름도 낯설은 코로나19가 보초병으로 자리를 지키고서 아이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엄청난 위력을 과시하는 낯선 존재에 어른도 아이들도 쉽지 않은 발걸음이었으리라.

아쉽고 허전한 마음만 가득한 그때, 텅 빈 마당 한가운데를 노랑나비 한 마리 허공을 가르며 사라졌다가 다시 날아온다. 제단 위에 놓인 하얀 국화꽃 송이를 본 것이다. 선생님의 미소가 온화하게 나비를 반긴다.

박길중 수필가(시민기자)
박길중 수필가(시민기자)

다시 박경리 선생의 묘소를 지나 2키로 정도를 가다 서면, 영화음악의 거장 정윤주선생의 묘소가 나온다. 정확히 3일 뒤에 치러지는 추모제이다. 윤이상 선생과는 초등학교 동기동창생인 선생은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의 정서에 가장 알맞게 온몸을 적셔 음악의 길로 나아 간 분이다.

어릴 적부터 동호동과 남망산에서 새벽을 열면서 민속적이고 민족적인 소재와 리듬을 체화시켜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통영중학교 교사로 부임한 이래, 음악에 대한 열망으로 1950년 주한미국 공보원 영화제작소 음악 담당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영화음악의 길로 접어든다. 악단 데뷔 작품으로 동향인 극작가 동랑 유치진 대본의 무용조곡<까치의 죽음>으로 제1회 한국 음악가협회 작곡자 상을 수상한다.

관현악곡으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 가던 선생은 문화 공보부 국립영화제작소 음악 담당으로 재직하면서 제1회 대종상 음악상,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청룡영화상 등을 수상하며 영화음악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6.25 동란 때 남망산 바다 건너 ‘화도’라는 섬으로 피난 가서 1년가량 머물렀던 기록이 있다. 40년 후에 실내악곡인 플루트 5중주곡 ‘화도’를 작곡해 발표한 것은 피란기간동안의 뚜렷한 추억이 영감으로 와 닿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양읍 신전리 다듬어지지 않은 산길을 5분여 거슬러 오르면 선생의 가족묘가 아늑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제단 앞마당에는 실내악을 연주해도 될만한 넓직한 공간이 마련돼 있어 후배 음악인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년 추모제를 지내오는 예술의 향기(회장 박우권)회원들의 열정이 선생의 영정 앞에서 통영음악의 미래를 불러오고 있었다.

                                                               시민기자 박길중(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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