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의 겨울 밤바람은 살을 에이 듯 날카로웠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살갗을 파고들 기세로 세차게 몰려와 무의식적으로 무거운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 쓰기 일쑤였다. 그 시각 무렵이면 어머니께선 하늘의 삼토성이 위치로 시간을 가늠하며 어제 다듬어 놓은 시금치를 챙겨 저자거리에 내다 팔러 갈 준비를 하셨다.

 

“빨리 일어나 옷 입고 갈 준비해라.”

 

내가 열네댓 살 되던 중학생 때였지 싶다. 까만 운동화는 무척 귀해서 보통의 아이들은 신어 보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지금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보잘 것 없는 운동화였다. 하지만. 그 때는 학생이기 때문에 신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집에서 시장까지의 거리는 졸잡아도 5km는 족히 되고도 남을 녹록치 않은 거리였다. 그 당시 무엇인가를 사기 위해서는 농사 지어 수확한 곡식이나 고구마를 시장에 내다 팔아야 했다. 그때 새 운동화를 꼭 필요했다. 그 운동화를 사기 위해 우선 고구마를 시장에 내다 팔아야 했다.

명주 목도리를 목에 칭칭 동여매고 고구마 포대를 지게에 지고 초롱불을 밝혀 든 어머니의 뒤를 따라 말없이 발길을 옮겼다. 가볍게 시작했는데 발걸음을 떼어 놓을수록 갈수록 어깨를 누르는 짐의 무게를 버텨내기 어려워 비틀거렸다. 나도 모르게 머리는 땅에 가깝게 숙이고 어께와 허리를 흔들며 짐을 추스르려고 용을 썼던 때문에 벌써 등가죽이 벗겨지는 것처럼 통증이 심해져 견딜 수 없었다. 너무도 고통스러워 절반 길도 걷지 못하고 땅 바닥에 주저앉아 울먹거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내 허리와 등 쪽을 살펴보고 혼잣말처럼 하셨다.

“아이고, 이일을 우짜몬 좋노”

 

하시며 고구마 포대를 시금치와 같이 머리에 이고 몇 번을 쉬며 시장에 도착하셨다. 얼마나 무거웠으면 그리 되었을까. 시장에 도착해서 우연히 어머니의 머리로 눈이 갔다. 놀랍게도 어머니의 머리 정수리는 납작해지셨다. 그 뿐이면 좋으련만 돌이켜보니 어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저자거리에 짐을 풀어 난전을 펼쳐놓고 “시금치 사이소! 고매 사이소!”라고 외쳐대셨다. 그런 어머니 옆에서 콧물을 훌쩍이며 추위를 견뎌내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설한풍이 몰아치는 저자거리에서 온몸으로 추위와 싸우다가 동녘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 오면 추위는 한층 더 뼈 속까지 스며들었다. 아마 거지가 기나 긴 겨울밤을 떨며 보내고 새벽녘에 얼어 죽는다는 말이 그래서 생겨났지 싶다. 그렇게 지독한 추위와 드잡이 하고 있는 나를 본 어머니가 따끈따끈한 오뎅(어묵)을 사 오셔서 먹으리고하셨다. 그 때의 어묵 맛은 영영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평생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적이 없다.

 

그렇게 장사를 마칠 무렵 날이 밝아오자 까만 운동화를 한 켤레 주시며 학교에 가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새벽에 집을 나서며 학생복과 책가방까지 챙겨 오신모양이었다. 학교까지의 거리는 여기서 약1km 정도만 걸어 가면되는 가까운 곳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10리(4km) 길을 걸어서 통학하던 추억을 길을 휘돌아 가는 모퉁이(모랭이)마다 추억을 심어둔 회억의 곳간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 곳간의 빗장 하나하나를 풀지 않을 참이다.

 

새벽시장에서 엄청 많이 떨다가 어묵을 먹었던 그날 회상이다. 그날은 하루 종일 따끈한 어묵과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해 선생님께 혼이 빠져 나갈 정도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는 자신의 건강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고, 빈한한 살림을 꾸리며 못 배운 서러움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러 손 마디마디 굳은살이 붙고 손톱이 닳아 뭉그러지도록 일해 오셨다. 언제나 억척스럽고 고달픈 삶을 온몸으로 견디고 버티며 살아온 지 아흔두 해에 이르셨다. 이제 허약해져서 당신 한 몸 지탱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집에 있으면 심심 하다시며 곧 잘 시장에 나가신다.

 

천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마침, 집에 승용차가 있어 시장까지 모셔드리고 저녁이면 모시고 돌아오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남의 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알면 자식 욕한다며 말려도 소용이 없으시다. 통영 중앙시장은 관광지 통제영, 병선마당, 문화마당, 남망산 공원 그리고 동피랑 아래에 있다. 그런 때문에 때때로 행사도 열리고, 젊은 청춘 남녀들의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심심함을 달래려 하나 보다 생각하지만 마음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아직도 밥상머리에선 맛난 음식이 있으면 “아가, 이거 먹어봐라“ 혹 멀리 출행이라도 하면 시간마다 손녀보고 “아빠한테 전화 해 봐라” 혹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못하면 방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마당으로 왔다 갔다 하시며 잠 못 이루신다. 이 사랑, 내 한 몸 가득 받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부디 부디 건강하게 행복 담아 만수무강하소서. 어머니!

 

 김맹한(수필가, 시인, 시조인) 작가
 김맹한(수필가, 시인, 시조인) 작가

 김맹한(수필가, 시인, 시조인) 작가 : 경남 통영 출생, 청일문학사 신인문학상수상 시 부문 등단, 사) 한국문학작가회 신인문학상수상 수필부문 등단, 한국 문학정신 시조 신인문학상 수상 시조부문 등단, 청일문학사 부회장 역임. 수향수필문학 회원, 문학작가상 수상(오은문학), 저서 시집 ‘한산섬 달 밝은 밤’(도서출판 들뫼), 공저 명시선집(청일문학사)·그대라는 이름하나(시와글벗 동인 제1집)·문장 한줄이 밤새 사랑을 한다(시와글벗 동인 제2집)·그대 올 때면(시와글벗 동인 제4집)·꾼과 쟁이7·꾼과 쟁이8(창작과 의식)·오은문학사 동인지1호·한국문학동인회 동인지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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