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지만, 봉평동 폐조선소 초가삼간은 태우기는커녕 무한정 방치된 채 쓰러져 없어질 지경이다. 사업진행이 더뎌지는 정도가 아니라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실정인데, 정작 사업주체들은 전혀 급할 것 없다는 태도여서 주민들의 분노만 키우고 있다. 7월 안에 오염토양 정화작업을 발주할 것이라는 본지의 『535호 1면(21년 7월 14일자)』보도 역시 오보(誤報)가 돼버렸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토양을 정화한 다음에야 도시재생사업 첫 단계가 시작될 수 있는데, 그 입구에서 원점을 맴돌고 있는 모양새다. 사업자인 LH공사는 ‘이미 화장실에 들어간 듯’ 태도를 보이고, 도시재생사업의 당사자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통영시는 ‘나 몰라라’ 식이다.

사업자와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관합의체도 회의만 8차례 열었지 뚜렷한 합의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답정너’ 주장만 펼칠 뿐, ‘양보와 합의’ 정신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무엇보다 같은 공간에서 회의를 가지면서도 상호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여 안타까울 지경이다.

환경단체 대표로 민관합의체에 참가한 지욱철 위원은 “사업대상지 전체를 1지역으로 하기로 결정했는데, LH공사 공문서에 1~3지역으로 구분해서 정화하기로 돼 있어 지난 8월말 8차 회의 개최를 요청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위원은 “공사구역 전체를 같은 지역으로 지정해서 정화하는 것, 최고기준에 맞추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에는 오염토양을 정화하는 기준을 1·2·3지역별로 구분해 정해 놨다. 중금속 허용기준이 1지역은 2지역보다, 2지역은 3지역보다 엄격한데, 가령 카드뮴의 경우 3지역은 60mg/Kg까지 허용되지만, 2지역은 10mg/Kg, 1지역은 4mg/Kg까지만 허용된다. 비소는 3지역(200)·2지역(50)·1지역(25), 톨루엔은 3지역(60)·2지역(20)·1지역(20)인데, 중금속 종류에 따라 1지역과 2지역 기준이 같은 경우는 있다.

전·답·과수원·대지(주거지)·학교용지·공원·사적지 등은 1지역에 해당하는 정화를 해야 하고, 임야·염전·창고용지·체육용지·유원지·잡종지 등이 2지역, 공장용지·주차장·주유소용지·도로 및 철도용지 등은 3지역이다. 1·2·3 지역구분은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에 정해진 지목에 따른다.

지욱철 위원은 “다른 위원들과 사업대상지 전체를 1지역으로 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면서 “민관합의체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 것 같다”고 또 다른 불만도 터뜨렸다. 민관합의체에서 결정한 내용이 LH본사에 보고 된 이후 다시 원위치하는 경우도 있다며 ‘전권대표’를 참석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이에 대해 LH공사 이모(李某) 차장은 “지난 4차 민관합의체 회의에서 전체부지 대상으로 오염토양 정화사업 발주를 먼저 하고, 우선 1지역을 대상으로 정화를 시작한 다음, 나머지 2~3지역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합의해 나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며 “회의록도 작성했고, 확인서명도 다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도시재생사업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라고 보지 않음에도, LH공사는 사업에 신경 쓰고 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길 바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손해는 감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도 “전체 부지를 1지역으로 정화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손실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과한다. 공사 내부감사나 중앙정부 감사에서 분명 지적받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통영시 도시재생과 조수용 팀장은 LH공사 관계자와 마찬가지로 4차 회의 결론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전체 사업 부지를 1지역으로 정화하자고 결정한 일은 없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주거지역인 1지역에 대해 우선 정화작업에 들어간 다음, 나머지 지역 상향조정 여부를 지속적으로 협의하자는 LH공사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민관합의체 위원이기도 한 통영시 황철성 환경과장은 “엄밀하게 말해서 LH공사가 법률에 위배해서 오염토양 정화하려는 점은 없다”고 말했다. 황과장은 “(LH공사 주장처럼)비용이 두 배가 되는 지 알 수는 없지만, 사업자가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판단 및 추정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통영시는 비용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고, 통영시민을 위해서라도 가급적 빨리 오염토양 정화작업을 마치고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영시, 당사자 책임감 가져야

통영시가 지나치게 LH공사를 편든다는 비판이 많다. 당초 도시재생사업에 없었던 고층주거지역을 최근에 허용한 경우는 대표적 사례다. 도시재생사업 당초계획 상 야나세조선소 쪽에 있던 5층 이하의 준주거 및 주거공간을, 다른 구역으로 옮겨 최고 30층,389세대의 주상복합용지로 건설하게끔 변경승인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사업을 시행하면서 이리저리 바꿀 것 같으면 애당초 도시재생사업 마스터플랜 국제공모를 왜 한 것이냐?”는 비판은 당연해 보인다. 2018년 4월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를 했고, 8월 포스코에이앤씨 컨소시엄의 ‘통영 Camp Mare’를 당선작으로 최종 선정했었다. 최종 당선작에는 35억 원 규모의 마스터플랜 수립 및 건축설계권이 주어진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이후 선정된 컨소시엄은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지.

통영시는 ‘불가피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도시재생사업 공모에 선정될 때는 지금처럼 정착된 매뉴얼이 없었다는 것. 지금은 정부가 ‘도시재생전략계획’을 먼저 수립하고, 구역별 도시재생활성화 계획을 국토부가 승인한 이후 비로소 사업공모를 하고 있다. 봉평동 도시재생사업이 선정됐을 당시엔 선정 이후 국제공모까지 마친 다음, 사업계획을 수립했다고. 순서가 바뀌었던 셈.

물론 응모 당시에도 경남도·LH공사가 계획안은 제출했다. 다만, 개략적인 수준에 그친 것이다 보니, 사업성에 맞도록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게 국제공모작이든 뭐든. 하지만 정보가 부족하거나, 불균형한 정보만 들은 주민들은 애꿎은 사람들만 탓하기 마련이다. “LH공사가 이익은 챙기면서 손해 보기는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바닷가 가까운 곳에 통영항을 조망할 수 있는 초고층 주상복합 주거건물을 건설하게 됐는데도, 오염토양 정화작업엔 생색만 내려한다는 것. “사업의 성공을 바란다면 공유수면에 대해서 정화작업을 할 때 방벽을 만들어서라도 오염이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통영시는 어떤가? “민관합의체에 참여하는 공무원들이 마치 구경꾼인 것처럼, LH공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질책한다. 심지어 “LH공사야 영리 기업체니까 그렇다하더라도, 통영시는 지역민들의 이익을 위해서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따끔하게 지적한다.

말은 쉽게 한다. “후대에까지 폐조선소를 물려주지 말자”고. “도시재생사업으로 제2의 도약을 이루자”고. 내년 1월이 토양정화 사업방법 결정시한이라고 하는데, 아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화기간이 거의 2년이라는데, 만약의 경우 사업시행 동력을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통영시는 적극적으로 주민의 편에 서서 의견을 제시해야 할 것이며, LH공사는 ‘화장실 들어가기 전하고 후하고 다르다’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염토양 정화작업에 열린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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