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채우는 맛, 통영나물

이영란 수필가(도산초 교사)
이영란 수필가(도산초 교사)

 

냉장고에서 콩나물, 무, 호박, 당근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야채를 제때 먹지 못해 몇 번이나 버린 기억이 있어 저건 꼭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콩나물 봉지를 뜯어서 씻은 다음 냄비에 물을 조금 붓고 안쳤다. 

콩나물이 익는 동안 무를 꺼내어 껍질을 얇게 벗겨냈다. 무가 이만하게 크기 위해서는 어떤 흙에서 어떤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 내가 지켜본 시간은 아니었다. 

무채를 썰어 큰 그릇에 담아놓고, 부드러운 씨가 들어앉은 둥근 호박은 반만 해도 충분해 보였다. 못생긴 둥근 호박은 가지런하게 채 썰기가 어렵지만 그런대로 모양이 나왔다. 당근도 곱게 썰어두었다.

곱게 채 친 음식을 보면, 음식은 예술이고 정성이란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음식은 만든 사람의 마음가짐이 오롯이 보이는 결과물이다. 대강대강 해서는 절대 제대로 된 맛을 낼 수가 없다. 그렇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무나물이 제대로 익을 때까지 볶는데 시간이 제법걸렸다. 

호박 나물은 너무 무르게 볶으면 익어서 퍼져버린 무화과처럼 맥 빠진 맛이 나서 적당한 식감을 유지하기 위해 눈을 떼지 않고 볶았다. 당근은 기름을 두르고 기름 색깔이 주황빛을 띠고 한 입 먹어서 부드럽게 씹힐 때 까지 볶았다. 이어서 냉동실의 오징어와 홍합, 두부를 넣고 탕국을 끓였다. 

저녁 시간에 쫓겨가며 겨우 짬을 내어 만든 표시가 났지만, 아들과 나는 대강의 나물 모양만 갖춰도 언감생심하고 먹을 일이었다.

흔하디흔한 재료를 다듬고 볶은 색색의 나물을 담고 뜨거운 탕국을 부으면 따뜻하고 푸짐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영혼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나는 육지에서 자란 귀하지 않은 채소들과 바다의 조개, 오징어, 문어를 넣어 끓인 국이 만들어 내는 기막힌 조화를 생각한다.

 혼자서는 결코 낼 수 없는 슴슴하고 구수하고 맑은 맛을 보면 바다가 육지였던 곳, 육지가 바다였던 곳, 서로 엇갈려버린 자신의 오랜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 모습이랄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명절 때 친정엄마가 마련하는 나물은 내가 어설프게 해 먹는 것에 비해 그 가지 수가 몇 배에 달한다. 

배추나 시금치와 같은 푸른 잎 채소, 가지, 호박, 박, 콩나물, 숙주나물, 무, 톳, 미역,  고사리, 도라지, 토란대 등 10여 가지를 훌쩍 넘긴다. 

엄마의 관심과 에너지는 자식과 손자들이 먹을 것들에 온통 쏠려있다. 진한 쌀뜨물로 탕국을 끓이면 채소와 국이 한데 합쳐져서 내는 그 부드러운 맛은 입 안에서 몸 속의 세포로 직행하는 느낌이다. 탕국과 우리 몸의 피가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거기에다 조금 꾸덕하게 마른 생선찜과 김치 한 가지만 있으면 세상에서 부족할것이 없는 한 끼 밥상이 된다. 엄마가 내어놓는 마른 생선도 돔, 말린 물메기, 말린 대구, 가오리, 민어조기, 대구아재비, 가자미 등 대여섯 가지는 되는데, 자식과 손자들을 보는 기쁨에 들뜬 엄마의 목소리와 호들갑을 양념으로 얹어 먹는 나물밥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

 시댁인 하동에서 먹는 나물의 방식은 조금 다르다. 싱싱한 채소와 바다의 해초를 주로 쓰는 이쪽 지방과는 다르게 고사리, 토란대, 말린 도라지 등 오랫동안 먹을 수 있도록 쪄서 말린 것들이 많다. 

나는 밥상에 오르기까지 말리고, 말린 것을 다시 물에 불리고, 삶고, 또 아린 맛을 빼기 위해 들인 어머님의 시간이 애닯기도할 뿐더러 산과 들에서 내어준 무궁한 먹거리들이 고마워서 통영에서 먹던 나물과는 다른 방식의 경이를 느꼈다. 다만 한 그릇씩 담아 밥을 함께 말아 먹는 통영식과는 달리, 다른 반찬 중의 하나로 밥상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밍밍한 탕국도 들어간 해산물에 비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통영에서는 당당히 주인 대접을 받건만, 들인 시간과 공에 비해 궁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냄비에 가득가득한 나물을 언제 다 먹을지 아득한 일이었다.

 나이를 먹어 시어른들에 대한 불편함과 어려움이 닳아가자 나는 찬장에서 제일 큰 국대접을 꺼내어 각자가 먹을 나물을 푸짐하게 담고 탕국을 자작하게 부었다. 

아들 삼 형제가 각자의 식솔을 거느리고 모인 인원은 12명이다. 12개의 국그릇에 담긴 탕국과 나물은 각자가 해결해야 할 삶의 책임을 뜻하기도 했다.

제사나 명절에야 구색을 갖춘 나물을 먹는다. 평소에 해 먹으면 그 맛이 잘 안 난다. 

양가를 찾아 부모 형제를 만나는 일에 번거로움이 없지는 않지만, 그 번거로움이 없다면 세상의 엄마만이 만들 수 있는, 영혼을 가득 채우는 나물밥을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영란(수필가):  도산초등학교 근무, 독서동아리 책갈피 대표, 수향수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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