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_ 크기 400×400×1500, 가죽나무 옻칠, 2019作
'기원' _ 크기 400×400×1500, 가죽나무 옻칠, 2019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하늘의 구름은 작품이 되고 바람은 은은한 음악이 되어 나무잎과 흙의 향기가 코를 자극하다. ‘나무’라는 것은 사회에서 흔히 힐링을 하게 해주는 매개체(媒介體)로 이해되고 있는데, 그로 인해 사람들은 나무와 관련되어 있는 것들을 보면 일상에서의 활력을 얻거나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 나무 한 그루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기까지 요구되는 시간과 노력은 짧지 않고 쉽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다.

목공예가들이 나무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것은 나무의 ‘나이테’이다. 작품에 쓰이는 나무가 얼마나 오랫동안 심산(深山)의 한 자락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지 또는, 한 마을의 안녕을 위해 문지기로 굳건히 서 있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특히 마을 어귀에 있던 높은 느티나무는 그 마을의 모든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오롯이 투영하여, 해가 갈수록 그 나이테를 더 선명하게 만들며 작품이 될 준비를 한다.

매년 나이를 먹어갈수록 생기는 그 나이테만큼 대패질과 사포질을 하며 모양을 갖춰가고 공예가의 땀으로 정교하게 깎아 진 이음새가 맞물려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기 까지에는 짧게는 한달, 길게는 1년이 소요된다.

변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서 목공예 작품들은 자연의 변화와 이 시대에 새롭게 나오는 사물들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다. 목공예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하는 이 시대와 그러한 시대속에서 변화하는 세상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작품에 투영하여 우리 삶의 일부로서 공존하게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목공예는 내면의 평온과 치유를 선물한다.

그러나 시대는 변화하고 있는데 과연 목공예는 그 자체로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는가? 내 대답은“아마도”다. 어린시절에 연을 날려본 사람들에게 익숙한 얼레와 연은 요즈음 현대사회에서는 조형물 또은 장식장으로 재해석 되기도 한다.

이는 목공예라는 하나의 예술을 통해 만들어진 개체를 현대사회에 맞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 또 다른 이름을 부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이다.

개체의 모습은 처음 그대로이다. 현대사회에서 또 다른 쓰임으로 재해석되고 인간이 더 쓰기 용이하게 새로이 정의되는 것, 또한 개체의 아름다움을 우리의 삶 가까이에 두고 즐기면서 그와 동시에 자연으로부터 얻는 치유를 여전히 느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대답이“아마도”라는 것은 아직 목공예의 발전이 더디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매너리즘에 빠져 변화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목공예는 신선미와 독창성의 측면에서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 목공예가 직면하고 있는 장애물들을 뛰어넘으려면 목공예가들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더 다양한 시각으로 자연과 현대사회를 관찰하고 전통공예를 재해석하여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문명은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끝없이 변화하려는 시도를 통해 진보(進步)해왔다.

이전의 방식에 익숙한 공예가로서 더이상 매너리즘에 빠지지않기 위해 끝없이 연구하고 성장하여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진보하는 공예가가 되기를 꿈꾼다.

박연호(목칠공예가)

 

박연호(목칠공예가) : 중요무형문화재 55호 (고)천상원 선생 이수자, 통영여수교류전, 진주공예품 초대전시,(현) 통영미협회원, 한국미술협회 회원, 경상남도 공예협동조합 이사, 통영소목방 운영(통영시 북신 49로 지하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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